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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시 1346 -전쟁단편소설6월 1일Part I | Chevauchée 해안이 검은 연기 속에서 떨었다.토마스 오브 요크. 그는 저녁 밀밭에 불을 놓고 활시위를 건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교회 지붕을 핥는다. 종소리는 없다. 종은 이미 녹슬어 쓰러졌다.그는 아직 농노의 등뼈를 가진 사내. 왕과 귀족의 전쟁이라 했으나 그에게 전쟁은 허기와 같다. 그는 허기를 채우듯 창고를 턴다. 밀 자루가 찢겨 흐른다. 닭이 울며 도망친다.해안 도로. 시체와 꿀꺽 삼킨 연기가 짙다. 나무 창틀에 항해 깃발이 걸리고, 먼 곳에서 노르만 말씨로 울부짖는 백성. 토마스는 듣지 못한다. 귀에 바람과 불꽃이 울린다.밤. 잉글랜드 군막 사이로 말뚝이 박힌다. 토마스는 칼을 갈지 않는다. 활줄이 칼보다 길고 차갑기 때문이다. 새 도구가 낡은 놋칼을 대신한다.그는 별빛 없는 하늘을 본다. 불길은 하늘보다 밝다. 그는 생각한다. 땅은 누구 것인가. 불에 타는 땅에는 주인이 없다. Part II | Kings and Beggars 파리에서 아미앵에 이르는 돌길.에티엔 드 보베. 은빛 격자 투구가 더러움에 얼룩진다. 파리 궁정 계단 위에서 그는 무릎 꿇은 상인을 본다. 상인은 전장에서 피가 얼마에 팔리는지를 말한다. 왕이 고개를 끄덕인다. 금화를 던진다.밤. 거지 소굴. 에티엔은 쓰러진 성문 아래에서 어린 병사가 손가락을 내민다. 함께 마신 와인 값이다. 병사는 웃는다. 치아가 빠졌다. 명예는 뜨거운 피에 잠겨 있다. 돈은 피보다 오래 간다.궁정 회의. 갑옷은 번쩍이나 심장은 벽돌 같았다. 필리프 왕이 깃발을 세운다. 귀족들이 명예를 말한다. 필요를 말하는 입술은 적다. 에티엔은 침묵한다. 명예는 칼에 묶인 종처럼 흔들린다.멀리 흙길. 굶주린 농부들이 부서진 제분소에 몰려 있다. 에티엔은 창 끝으로 그들을 돌려세운다. 왕의 말굽은 그들의 빵을 으깬다. 그는 헛헛한 속을 움켜쥔다. 기사도의 심장은 서서히 재가 된다. Part III | The Ridge Crécy-en-Ponthieu 외곽. 낮은 언덕. 잿빛 포도밭. 말라비틀어진 덩굴이 뼈처럼 휘었다.토마스는 언덕에 내린다. 말뚝이 잣나무처럼 흙에 꽂힌다. 그는 각목을 몽둥이로 두들긴다. 나무결이 갈라지며 진흙이 튄다. 밤새 빗방울이 말굽자국을 채운다.라누초 디 루카. 제노바 석궁의 대장. 그는 진흙 위에 구리를 세어 본다. 동전을 물에 씻어 무게를 잰다. 빛은 잿빛이다. 석궁줄을 조이며 말한다. 값이 맞으면 쏜다. 값이 틀리면 물러난다. 그에게 전쟁은 계산이다.설교자. 검은 수도복. 그는 길섶에 무릎 꿇어 흙을 입에 댄다. 흙은 피맛이다. 그는 독백한다. 신은 돌처럼 침묵하고 인간은 돌 속으로 기어든다.새벽을 앞둔 언덕. 장궁병들은 지평선을 바라본다. 침묵이 깃발 같다. 까마귀가 와서 포도덩굴 위에 앉는다. 울음은 없다. 바람만 분다. 땅이 숨을 죽인다. Part IV | White Rain 해돋이. 언덕은 회색 물결. 라누초의 제노바 인부들이 전열을 편다. 석궁 노가 삐걱거린다. 첫 살이 나간다. 공기의 막을 찢는다.해가 중천. 하늘이 백지처럼 번다. 토마스가 활을 겨눈다. 장궁은 긴 나무다. 손끝이 떨린다. 흰 깃 화살이 날아간다. 흰 비다. 연속.기병대가 밀려온다. 에티엔이 전방에 선다. 말의 숨결이 김을 토한다. 그는 외친다. 그러나 말굽 소리가 삼켜 버린다. 차가운 비가 떨어진다. 흰 비와 섞인다. 장궁의 비는 끊이지 않는다.석궁병들이 후퇴한다. 라누초는 손가락을 세어 본다. 숫자가 줄었다. 그는 돌아선다. 금화가 바닥을 뒹군다. 가치가 없다. 그는 자리를 뜬다.정오. 비는 진창을 만들었다. 기사는 진흙에 잠긴다. 에티엔은 말 위에서 화살을 맞는다. 깃대 끝이 어깨뼈를 꿴다. 철이 살을 헤집는다. 그는 칼을 빼지만 칼은 허공을 친다. 갑옷이 무거워진다.황혼. 해가 피빛으로 지며 까마귀 그림자 길어진다. 토마스는 활통이 비었음을 본다. 그는 곡식을 타며 올라오는 연기를 본다. 적도 동료도 없다. 그는 숨을 쉰다. 숨 끝에 철 냄새.칠흑. 밤이 언덕을 삼킨다. 횃불 몇 줄기가 흙탕물에 흔들린다. 설교자는 언덕 위에서 무릎 꿇는다. 그는 중얼거린다. 칼이여 잠들라. 인간이여 짐승으로 돌아가라. 별은 구름 뒤다. Part V | Harvest of the Dead 새벽 빛 잿빛. 안개가 들판을 삼킨다. 바람이 사라졌다.토마스는 활을 내려놓고 시신을 넘는다. 살점과 철편이 한데 엉겼다. 그는 발끝으로 기사 투구를 건드린다. 안에 얼굴이 없다. 흰개미가 든다.에티엔의 말이 쓰러진 옆에 팔이 누워 있다. 방패가 흙에 반쯤 묻혔다. 문장(紋章)의 사자 위에 진흙이 겹겹이 앉았다. 에티엔의 눈은 하늘을 본 채 굳어 있다. 기사도의 문장은 그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라누초는 언덕 아래에서 동전 자루를 뒤집는다. 빈 자루가 바람에 찢어져 나풀거린다. 그는 돌아선다. 동전은 흙 속으로 사라진다. 그의 계산이 끝났다. 숫자는 죽음보다 짧았다.설교자는 끊긴 창대를 지팡이 삼아 걷는다. 그는 언덕 아래 해골을 주워 든다. 해골은 물에 젖어 무게가 없다. 그는 속삭인다. 흙은 흙으로. 살은 살로. 피는 비로. 소리는 침묵으로.까마귀 울음. 들판 어딘가에서 누군가 신음한다. 토마스는 그 방향으로 걷다가 멈춘다. 허리까지 진흙이다. 그는 활을 잃었고 칼도 없다. 손을 본다. 손이 떨린다.비가 내린다. 늦은 비. 방패와 시체 위에 떨어진다. 흙탕물이 흡수한다. 금빛 깃발이 찢겨진다. 아무도 세우지 않는다.저녁. 연기와 안개가 섞여 빛이 없다. 들판 구릉이 마치 파도 같다. 파도 위에 뼈가 떠다닌다.토마스는 언덕을 뒤로한다. 남쪽으로 난 길. 런던도 파리도 아닌 길.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 안다. 그것이 의미인지 공허인지 모른다.설교자는 들판 중앙에 독초를 꽂는다. 십자가가 아니다. 목단도 아니다. 그는 돌 하나를 찾아 올려놓는다. 바람 한 점이 와서 돌을 넘기고 간다.밤. 까마귀가 묵은 피를 쪼아 먹는다. 달은 없다. 별이 없다.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끝나지 않는 숨결이 느껴진다.전쟁이 지나간 자리. 왕도 기사도 상인도 설교도 함께 묻힌 자리. 들판은 다시 밀을 품을 것이다. 밀은 빵이 되고, 빵은 다시 피가 된다.다만 오늘의 흙은 이름 없는 뼈를 품는다. 살과 철이 한 번에 썩어드는 시간. 그 사이 어디에도 노래는 없다.
• 고독이 눌러앉은 -호러단편소설5월 31일. 바닥에 얼룩이 있다. 옅은 회흑색. 아직은 형체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것이 무엇인지. 저것이 누구인지. 내 왼쪽 어깨가 닿을 자리다. 그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살이 무너지고, 체액이 스며들고, 뼈만 남을 때까지 바닥을 적실 나의 흔적.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보인다. 처음엔 햇빛이 만든 그림자인 줄 알았다. 창틀의 모서리가 바닥에 드리운 어둠. 하지만 해가 지고 밤이 와도 얼룩은 그 자리에 있었다. 더 선명하게. 더 또렷하게. 나는 얼룩 주위를 걸어본다. 한 걸음. 두 걸음. 발소리가 방 안에 울린다. 텅. 텅. 비어 있는 소리. 얼룩의 가장자리에서 멈춘다. 무릎을 꿇고 손을 뻗는다. 만지기 직전에 멈춘다. 차갑다. 아직 닿지 않았는데 차가움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창문 너머로 저녁이 번진다. 붉은빛이 얼룩 위에 겹쳐진다. 순간, 그것이 검붉게 일렁인다. 살아 있는 것처럼. 숨 쉬는 것처럼.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방 안의 시계가 멈춰 있다. 언제 멈췄는지 모른다. 초침이 12와 1 사이에서 떨고 있다. 가려는 듯, 가지 않으려는 듯. 나도 그 사이에 있다.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 사이. 나는 얼룩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그것이 나를 부르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서, 이미 끝난 시간에서. . 통증이 왼쪽 어깨에서 시작됐다. 바늘이 살을 뚫는다. 천천히. 깊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더 깊이 박힌다.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눕는다. 통증은 따라온다. 그림자처럼. 충실하게. 새벽 네 시. 천장의 얼룩을 본다. 아니, 바닥의 얼룩이 천장에 비친 것을 본다. 거울처럼. 물처럼. 위와 아래가 바뀐다. 내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떨어질 것 같다. 얼룩 속으로. 일어나 앉는다. 어지럽다. 방이 기울어진다. 벽이 숨을 쉰다. 들이쉬고. 내쉬고. 나보다 규칙적으로. 얼룩이 조금 더 진해졌다. 어제보다. 한 시간 전보다. 1분 전보다.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다. 받지 않는다. 벨소리가 멈춘다. 문자가 온다. "밥은 먹고 있니?" 대답하지 않는다. 다시 온다. "걱정된다." 또 온다. "제발 연락 좀 해라." 화면을 끈다. 어제도 울렸다. 그제도.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엔 미안했다. 지금은 무겁다. 그 미안함조차. 부엌으로 간다. 냉장고를 연다. 우유가 상했다. 덩어리진 흰 것들이 떠 있다. 시큼한 냄새. 문을 닫는다. 배가 고프지 않다. 언제부터 안 고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창밖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공놀이를 하는 모양이다. 탁, 탁, 공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 내 심장 소리와 겹친다. 탁, 탁. 하지만 박자가 다르다. 아이들의 공은 빠르고 경쾌하다. 내 심장은 느리고 무겁다. 텔레비전을 켠다. 아침 뉴스다. 오늘도 누군가 혼자 죽었다고 한다. 2주 만에 발견됐다고. 이웃이 냄새를 맡고 신고했다고. 앵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잠시 후 날씨를 전한다. 맑겠다고 한다. 끈다. 소파에 앉는다. 아니, 쓰러진다. 몸이 무겁다. 뼈가 쇠로 변한 것 같다. 살이 돌로 변한 것 같다.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이고 싶지 않다.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무 일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생각이 나를 더 무겁게 누른다. 바닥으로. 얼룩으로. 저녁이 된다. 하루가 지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니, 하나 바뀌었다. 얼룩이 더 진해졌다. 내 형체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 빛이 너무 밝다. 커튼을 쳤는데도 햇빛이 스며든다. 틈으로. 구멍으로. 숨구멍으로. 바늘처럼 눈을 찌른다. 나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올린다. 어둠 속에서도 빛은 스민다. 피부를 뚫고, 뼈를 뚫고, 영혼을 뚫고. 소리가 너무 크다. 냉장고 모터 소리. 형광등 깜빡이는 소리. 바람이 창틈으로 새는 소리. 모든 소리가 귓속에서 폭발한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다. 소리는 뼈를 타고 전해진다. 냄새가 난다. 곰팡이 냄새. 썩은 과일 냄새. 젖은 종이 냄새. 오래된 먼지 냄새. 그리고 내 몸에서 나는 냄새. 씻지 않은 피부. 닦지 않은 이빨. 비워지지 않은 내장. 구별이 안 된다. 방과 나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젖은 이불의 냄새가 살 사이 어둠처럼 스며든다. 일어나려고 한다. 몸이 바닥에 붙어 있다. 아니, 바닥이 나를 잡고 있다.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등을 붙잡는다. 얼룩이다. 얼룩이 나를 당긴다. 이리 와. 이리 와. 아직은 이르다. 아직은. 벽에 달력이 걸려 있다. 작년 것이다. 아니다. 재작년인가. 모르겠다. 숫자들이 흐릿하다. 날짜가 의미를 잃는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섞인다. 텔레비전을 켠다. 화면이 일그러진다. 사람들의 얼굴이 늘어난다. 녹는다. 흐른다. 목소리도 늘어진다. 느려진다. 끊긴다. 대학 동기가 나온다. 변호사가 됐다고 한다. 양복을 입고 있다. 반듯하다. 빛난다. 살아 있다. 너무나 살아 있다. 아나운서가 축하한다고 말한다. 그가 활짝 웃는다. 하얀 이빨이 번쩍인다. 칼날처럼. 채널을 돌린다. 또 다른 동기다. 결혼한다고 한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 하얗다. 눈부시다. 행복하다고 한다. 눈물을 흘린다. 기쁨의 눈물이라고 한다. 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보인다. 빛나는 그들. 살아 있는 그들. 움직이는 그들. 나는 가만히 있다. 썩어가는 가구처럼. 먼지 쌓이는 책처럼. 시간이 멈춘 시계처럼. 열등감이 가슴을 찌른다. 송곳처럼. 못처럼. 깊이. 더 깊이. 하지만 이상하다. 아프면서도 무덤덤하다. 찔리면서도 무감각하다.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무섭다. 상관없다는 이 마음이. 상관없어지는 내가. 아무것도 부럽지 않은 내가. 살고 싶지 않은 내가. 화장실에 간다. 거울을 본다. 내가 아닌 것 같다. 눈이 움푹 들어갔다. 광대뼈가 튀어나왔다. 입술이 갈라졌다. 피가 난다. 핥는다. 짠맛. 철맛. 죽음의 맛.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얼룩이 커졌다. 갈색빛을 띤다. 내 형체를 닮아간다. 옆으로 누운 모습. 무릎을 끌어안은 모습. 태아처럼. 시체처럼. . 이름들이 사라진다. 아침에 일어나 내 이름을 잊었다. 입 속에서 굴려본다. 아무 소리. 의미 없는 음절. 남의 이름 같다. 죽은 사람의 이름 같다. 휴대폰 연락처를 본다. 숫자들만 보인다. 010으로 시작하는 나열. 이것이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김, 이, 박. 성씨만 겨우 보인다. 얼굴들도 흐릿해진다. 엄마의 얼굴도. 형의 얼굴도. 친구들의 얼굴도. 사진을 꺼내본다. 졸업사진. 가족사진. 여행사진. 모두 남의 사진 같다. 저 웃는 사람이 나였나. 저 팔을 두른 사람들이 내 사람들이었나. 종이 위의 유령들. 빛바랜 환영들. 방이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귀가 먹먹하다. 이명이 들린다. 키이잉. 끝없이 이어지는 금속음. 뇌를 긁는 소리. 미칠 것 같다. 아니다. 이미 미쳤나. 심장 소리만 들린다. 탁. 탁. 점점 느려진다. 초침보다 느리게. 분침보다 느리게. 시침보다 느리게. 언젠가는 멈출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외로움이 사라진다. 아니, 외로움인지 평온함인지 구별이 안 된다. 혼자라는 것이 자연스럽다. 숨 쉬는 것처럼. 죽어가는 것처럼. 창밖을 본다. 사람들이 지나간다. 개미 같다. 점 같다. 의미 없는 움직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알 수 없다. 알고 싶지 않다. 그런데 무섭다. 이 평온함이. 아무것도 그립지 않은 이 마음이. 세상과 단절된 이 고요함이. 나는 이미 죽은 것은 아닐까. 죽어서 이렇게 평온한 것은 아닐까. 죽었는데 모르는 것은 아닐까. 가슴에 손을 얹는다. 박동이 느껴진다. 희미하게. 멀리서. 남의 심장 같다. 빌린 심장 같다. 곧 돌려줘야 할. 얼룩이 암자색으로 변했다. 정확히 내 형태다. 옆으로 누운 모습. 왼쪽 어깨가 바닥에 닿은. 오른손으로 가슴을 감싼. 숨이 멎은 듯한. 영원히 멎은 듯한. 벌레가 기어간다. 벽을 타고. 천천히. 여유롭게. 나보다 더 살아 있다. 먼지도. 곰팡이도. 공기 중의 포자들도. 모두 나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나는 앉아 있다. 얼룩 옆에. 얼룩을 보며. 기다린다. 무엇을? 모른다. 아니, 안다. 저 안으로 들어갈 날을. 저것이 될 날을. 밤이 깊어진다. 어둠이 짙어진다. 나와 얼룩의 경계가 흐려진다. 누가 나고 누가 얼룩인지. 누가 살았고 누가 죽었는지.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엄마다. 이번엔 받는다. 왜인지 모르게. "살아 있니?" 대답하지 못한다. 살아 있나? 정말로? "말 좀 해봐." 입을 연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목구멍이 막혔다. 성대가 굳었다. 혀가 돌이 됐다. "제발... 걱정되잖아..." 엄마가 운다. 저 멀리서. 다른 세계에서. 산 자들의 세계에서. 전화를 끊는다. 미안하다. 하지만 미안함도 흐릿하다. 물에 젖은 글씨처럼. 지워져 가는 이름처럼. . 숫자를 잊었다. 오늘이 며칠째인지. 몇 월인지. 몇 년인지. 달력의 숫자들이 춤을 춘다. 섞인다. 흩어진다. 의미를 잃는다. 시간이 원을 그린다. 직선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점에서 만난다. 그 점이 나다. 그 점이 얼룩이다. 거울을 본다. 내가 없다. 희미한 형체만 있다. 연기 같은. 안개 같은. 만지면 흩어질 것 같은. 이미 흩어진 것 같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입을 열어도 소리가 되지 않는다. 생각도 흩어진다. 단어들이 의미를 잃는다. 문장이 되지 않는다. 언어가 무너진다. 그저 느낀다. 통증을. 압박을. 질식을. 하지만 그것도 멀다. 남의 고통 같다. 텔레비전 속 고통 같다. 끄면 사라질. 빨리. 제발. 빨리. 죽음이 와주기를. 이 지옥이 끝나기를. 더는 견딜 수 없다. 살아 있는 것도. 죽어가는 것도. 그 사이에 매달려 있는 것도. 하지만 죽음은 오지 않는다. 이미 시작됐는데 끝나지 않는다. 숨은 계속된다. 희미하게. 가늘게. 끈질기게. 저주처럼. 형벌처럼. 몸이 무너진다. 살이 흐른다. 뼈가 녹는다. 하지만 의식은 또렷하다. 더 또렷해진다. 모든 것을 본다. 느낀다. 안다. 내가 어떻게 발견될지. 어떤 모습일지. 어떤 냄새일지. 다 보인다. 미래가 현재처럼 선명하다. 경찰이 올 것이다. 문을 부술 것이다. 들것에 실릴 것이다. 검은 봉투에 담길 것이다. 얼룩만 남을 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가족들이 올 것이다. 울 것이다. 자책할 것이다. 왜 연락하지 않았냐고. 왜 혼자 있었냐고. 왜 말하지 않았냐고. 형이 주저앉을 것이다. 엄마가 쓰러질 것이다. 아버지가 말을 잃을 것이다. 그들의 삶에 얼룩이 질 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이웃들이 수군거릴 것이다. 고독사라고. 가족이 있는데도. 젊은 나이에. 안타깝다고. 무서워하며. 피하며. 뉴스에 날 것이다. 며칠째 젊은 남성. 고독사 증가. 사회문제. 대책 필요. 그리고 잊힐 것이다. 다음 뉴스에. 다음 죽음에.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미안함도 힘을 잃는다. 감정이 바랜다. 색이 빠진다. 미안함이 무력으로. 무력이 무감각으로. 무감각이 무(無)로. 그들도. 나도. 이 모든 것도. 의미가 없다. 무서울 만큼 의미가 없다. 텅 빈 우주 같다. 메아리 없는 외침 같다. 얼룩이 먹물처럼 검다. 완성됐다. 내가 누울 자리. 내가 녹아들 자리. 내가 될 자리. 하지만 나는 아직 여기 있다. 얼룩 옆에. 얼룩처럼. 얼룩보다 더 흐릿하게. 문득 깨닫는다. 죽음은 사건이 아니다. 과정이다. 긴 과정. 끝없는 과정. 나는 그 안에 있다. 한참 전부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리고 또 깨닫는다. 이 과정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죽음조차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영원히 죽어갈 것이다. 죽지도 못한 채. . 초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시계는 벽에 걸려 있다. 멈춘 지 오래다. 초침은 12와 1 사이에서 떨고 있다. 영원히 그 사이에. 심장도 거의 멈췄다. 한 시간에 한 번.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탁. 희미한 신호. 살아 있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숨이 얕다. 너무 얕아서 들리지 않는다.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질긴 실처럼 이어진다. 끊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초침 소리가 떨어졌다. 나는 끝났다고 확신했다. 드디어. 마침내. 해방이라고. 그러나 숨은 멎지 않았다. 얼룩은 더 검어졌다. 죽음이 나를 구하러 오는 길도, 나를 놓아줄 문도 모두 멈춰 있었다. 시간이 정지했다. 공간이 응고됐다. 나는 그 안에 갇혔다. 호박 속 벌레처럼. 얼음 속 매머드처럼. 영원히 보존되는. 그래서 나는 내 안의 빈방을 열었다. 그 방엔 나보다 먼저 썩어버린 내가 앉아 있었다. 오래전에 죽은 나. 태어나기 전에 죽은 나. 죽기 전에 죽은 나. 우리는 서로를 본다. 산 나와 죽은 나. 죽은 나와 산 나. 구별이 없다. 경계가 없다. 모두가 나다. 모두가 나였다. 모두가 나일 것이다. "얼마나 더?" 내가 묻는다. 빛이 없다. 숨이 엉긴다. 이름도 무겁다. 방이 좁아진다. 벽이 다가온다. 천장이 내려온다. 바닥이 올라온다. 관 속 같다. 자궁 속 같다. 구별이 없다. 나는 기다린다. 끝나지 않을 끝을. 오지 않을 죽음을. 이미 와버린 죽음을. 영원히 진행되는 죽음을. 얼룩 위에 눕는다. 차갑다. 축축하다. 살갗에 스며든다. 피부 아래로. 근육 사이로. 뼈 속까지. 나는 얼룩이 되고, 얼룩은 내가 된다. 완벽한 일치. 완전한 합일.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 처음부터 있어야 했던 자리.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자리. 하지만 끝이 아니다. 시작도 아니다. 그저 계속된다. 숨이. 희미한 의식이. 끝없는 기다림이. 방이 숨을 쉰다. 느리게. 무겁게. 나 대신. 나를 대신해서. 나와 함께. 나 안에서. 벌레들이 기어온다. 천천히. 정중하게. 그들도 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을. 먼지가 쌓인다. 한 층. 두 층. 열 층. 백 층. 시간의 지층. 존재의 퇴적. 하지만 그 아래서 나는 여전히 숨 쉰다. 깊은 땅속 씨앗처럼. 발아하지 못할 씨앗처럼. 전화가 울린다. 아무도 받지 않는다. 받을 수 없다. 벨소리가 메아리친다. 텅 빈 방 안에. 텅 빈 시간 속에. 텅 빈 존재 안에.
• 완벽한 장의사 -공포단편소설5월 28일1. 그의 손끝에는 언제나 생명이 흘렀다. 죽은 자의 얼굴에 다시금 숨결을 불어넣는 마술사, 장의사 이한수는 그렇게 불렸다.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싸늘했던 얼굴에 옅은 온기가 번지고, 딱딱하게 굳었던 피부에 미세한 탄력이 돌아왔다. 그 과정은 마치 죽음과 삶의 틈새를 가만히 쓰다듬는 일처럼 섬세했다.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아요." 유족들의 감탄이 작업실을 가득 채울 때마다, 한수는 조용한 만족감에 젖었다. 차가운 시신 위로 그의 손이 지나가면, 창백했던 뺨에 장미빛이 돌고, 굳어버린 입술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죽음의 냄새 대신 은은한 꽃향기가 피어올랐다. 어느새 그의 작업실에는 꽃향기가 배어들었고, 그것은 장례식장의 차가운 공기까지 조금씩 덮었다. 처음엔 단순한 직업정신이었다. 완벽한 복원으로 유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던 것.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마음은 미묘하게 변질되어갔다. 더 완벽하게, 더 생생하게, 더 아름답게. 손끝에서 태어나는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신적인 고양감이 점점 강렬해졌다. "선생님 솜씨는 정말 신의 경지예요." 칭찬이 쌓일수록 한수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밤이 깊어도 그는 작업실을 떠나지 않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그의 손은 쉼 없이 움직였고, 죽은 자들은 그의 손길 아래 하나둘 되살아났다. 그의 작업실에는 시간의 흐름조차 멈추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두려움에 조심스레 물었다. "이런 일에 지치지 않으세요?" 한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죽음의 끝에서라도 위안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2. 첫 번째 꿈을 꾼 것은 어느 가을 밤이었다. 창밖에는 낙엽이 바람에 떠밀려 구르던 날이었다. 한수가 복원했던 노인이 관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미소 지었다. "고맙네, 선생." 목소리는 바람결처럼 부드러웠다. 꿈속에서 한수는 기쁨에 떨었다. 자신의 손길이 죽은 자에게 진정한 평안을 선사했다는 증거였으니까. 그 후로 꿈은 더욱 선명해졌다. 복원된 시신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한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되살아나,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한수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기도 했다.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그는 알 수 없는 벅차오름과 동시에 기묘한 허기를 느꼈다. 자신이 단순히 죽은 자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수 씨, 요즘 너무 몰입하시는 것 아니에요?" 동료 장의사 김 선생이 우려의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 혼자 시신과 대화하시는 것 같던데... 작업실 불도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고요." 한수는 피식 웃었다. "대화가 아니라 교감이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더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어요. 죽음도 사람마다 다르게 오거든요." 김 선생의 얼굴이 굳었지만, 한수는 개의치 않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점점 그는 꿈속에서 마주친 시신들과 현실에서의 자신이 구분되지 않는 기분을 느꼈다. 어둠 속, 자신의 손끝에 죽은 자들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했다. 3. 그날 실려온 시신은 교통사고로 인해 왼쪽 팔 일부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한수는 평소와 같이 밀랍을 준비했지만, 뭔가 아쉬웠다. 밀랍으로는 진짜 살의 질감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었다. 손끝에 남아 있는 미세한 결까지 되살리고 싶은 욕망이 점점 커졌다. 작업실의 고요함 속에서 한수는 자신의 왼쪽 팔을 내려다봤다. 똑같은 부위였다. 만약... 날카로운 메스가 자신의 살을 가를 때, 한수는 고통 대신 황홀함을 느꼈다. 자신의 살점이 죽은 자의 팔에 이식되는 순간, 세상이 완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진정한 부활이었다. 살점의 온기가 식은 살에 스며들면서, 한수는 오히려 자신이 살아있음을 더 절실하게 느꼈다. 이튿날, 유족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정말 살아있는 것 같아요!" 그들의 눈에는 경외감이 가득했다. 죽음의 슬픔이 경이와 위안으로 바뀌는 순간, 한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들은 몰랐다. 그것이 진짜로 살아있다는 것을. 4. 그 후로 한수의 헌신은 더욱 깊어졌다. 손가락 하나, 피부 한 조각, 때로는 갈비뼈 일부까지. 시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는 주저없이 자신의 것을 내주었다. 밀랍과 약품, 인공 보형물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질감을 그는 희생을 통해 복원했다. 거울 앞의 자신은 점점 야위어갔지만, 그의 작품들은 더욱 완벽해졌다. 장례식장을 찾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그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한수는 오히려 더욱 힘차게 작업에 몰두했다. "한수 선생, 몸 상태가... 최근 들어 얼굴도 많이 상하신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한수는 붕대로 감싼 손목을 감추며 말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죽은 자들에게 평안을 주는 게 제 일이니까요." 밤마다 꿈속에서 만나는 그들이 더욱 생생해졌다. 이제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졌다. 작업 중에도 복원된 시신들이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거울 속에서, 한수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에 시달렸다. "더... 더 완벽하게..." 5. 그날은 유난히 추웠다. 한수는 마지막 시신의 복원을 마치고 나서, 갑자기 온몸의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은 이미 시신과 다를 바 없었다. 여기저기 붕대로 감싼 몸, 창백한 얼굴, 함몰된 눈. 무릎 위에는 붉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어딘가에서 피가 새고 있다는 사실조차 그는 실감하지 못했다. "완벽해졌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조용히 의자에 앉아, 손끝에 남은 감각을 더듬으며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이미 그것은 자신의 손이 아니라, 수많은 죽은 자들의 것이 섞여 있는 듯했다. 6. 한수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의 몸 곳곳이 도려내어져 있었고, 지난 몇 년간 그가 복원했던 시신들과 일치하는 부위들이었다. 경찰과 장례식장 직원들은 충격과 혼란 속에서 서로를 바라봤다. "미친 짓이었어..." 김 선생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제 끝이야. 누가 그를 복원할 수 있겠어..." 장례식장 측에서는 한수의 시신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아무도 그를 복원하려 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의 방문자도 없던 그의 장례식장에는 쓸쓸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기적이 일어났다. 직원이 의식을 차리기도 전에, 장례식장에 들어온 햇빛이 유리창을 타고 조용히 그의 얼굴을 비췄다. 7. 한수의 시신은 완벽했다. 도려내어졌던 부위들이 모두 메워져 있었고, 그것들은 분명히 다른 시신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하나의 몸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피 한 방울, 살결 하나까지도 빈틈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눈을 떴다. "죽었다는 건 착각이었어요." 한수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한수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유연했고, 목소리는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차분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제가 제 몸을 훼손했다는 것도 루머일 뿐입니다. 보세요, 이렇게 멀쩡하지 않나요?" 실제로 그의 몸은 완벽했다. 아니, 완벽 그 이상이었다. 전보다 더 조화롭고, 더 아름다웠다. 손끝에 힘을 줄 때마다, 어디선가 익숙한 감촉이 전해졌다. 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새겨진 수많은 얼굴, 수많은 삶의 흔적을 읽었다. 8. 부활한 한수는 전과는 다른 존재였다. 그의 눈빛에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가 있었다. 그의 미소는 더욱 완벽해졌고, 목소리는 천상의 것처럼 달콤했다. 이전보다 언행이 더 조용하고 침착해졌지만, 그 침묵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이 감돌았다. 복원 기술은 신의 경지에 달했다. 그의 손을 거친 시신들은 살아있을 때보다 더 아름다워졌다. 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먼 곳에서도 찾아왔고, 그의 장례식장에서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다. 지역 신문에도 그의 이름이 실렸고,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우리 아버지도 선생님께서 보살펴주시면..." "남편이 그토록 아름답게 잠들다니..." 칭송이 쌓일수록 한수는 더욱 완벽해져 갔다. 밤마다 그는 안치된 시신들로부터 무언가를 가져왔다. 더 아름다운 눈, 더 곧은 코, 더 우아한 손가락. 그는 자신을 조각품처럼 다듬어 나갔다. 점점 그의 외모는, 그가 복원한 이들의 아름다움이 한데 섞인 듯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9. 그의 명성이 퍼져나갈수록,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밤마다 문 앞에 꽃다발과 편지가 놓여 있었다. "저도 선생님께서 돌봐주시면..." 아직 건강한 사람들이 찾아와 예약을 하려 했다. 한수의 미소와 목소리에 매혹된 사람들이었다. 그를 본 후 갑자기 말수가 줄거나,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이들도 있었다. "아직 이른 것 아니에요?" "그렇긴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가야 할 길이잖아요. 그때 선생님께서 저를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주신다면..." 첫 번째는 우연이었다. 예약을 했던 젊은 여성이 며칠 후 자살했다. 유서에는 "한수 선생님께 부탁드린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녀의 장례를 맡은 한수는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들여 복원했다. 한수는 그녀를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게 복원했다.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은 모두 숨을 멈췄다. 그녀는 살아있을 때보다 더 아름다웠다.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10. 두 번째, 세 번째가 이어졌다. 한수를 본 사람들 중 일부가 자신의 죽음을 그에게 맡기고 싶어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평안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떠났다. 예약 명단에는 죽지 않은 이들의 이름이 늘어갔다. 한수의 장례식장 앞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상해요." 김 선생이 우려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일찍..." "그들이 원한 겁니다." 한수는 조용히 답했다. "진정한 완벽함을. 저는 단지 그들의 소망을 들어줄 뿐이에요." 그의 얼굴은 더욱 빛났다. 죽은 자들로부터 가져온 아름다움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제는 인간의 것을 넘어선 美를 자랑했다. 그와 대화한 사람들마저, 그의 미소와 눈빛에 취해 돌아가는 일이 잦았다. 11. 한수의 장례식장 앞에는 이제 줄이 서기 시작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의 줄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장례식 일정을 예약하며, 자신이 원하는 외모와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요청했다. "저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세요. 저만의 아름다움을 찾아주세요." 그런 말이 오갔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선생님께서 계시니까." 한수는 그들 모두에게 같은 대답을 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도해드리겠습니다." 그의 미소는 달빛처럼 차갑고 아름다웠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그를 찾았다. 때로는 유명 연예인도, 부유한 노인도 그의 손길을 원했다. 12. 밤이 깊어갈수록 한수의 작업실에서는 더 많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가 복원한 시신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모두 감사를 표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오라고 속삭였다. 한수는 점점 꿈과 현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머물렀다. 한수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조각했다. 어느 젊은 남성의 완벽한 턱선을, 어느 소녀의 맑은 눈동자를. 스스로의 육신을 손질하며, 그는 더는 인간의 몸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죽음과 아름다움이 한데 섞여 영원히 살아 있는 무언가로 변해갔다. 거울 속의 그는 이제 신과 같았다. 죽음의 신이자 미의 신이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신도들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었다. 장례식장은 더 이상 단순한 이별의 장소가 아니었다. 새로운 신화가 시작되는 제단이 되었다. 창문 너머로 새벽이 밝아오지만, 한수에게는 더 이상 밤과 낮의 구분이 없었다. 그에게는 오직 완벽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완벽함을 갈망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레그니차 -전쟁단편소설5월 27일I. 새벽 연무가 레그니차 평야를 가로질렀다. 자욱한 안개와 멀리서 타오르는 마을의 연기가 뒤섞여 대지 위에 낮게 깔렸다. 귀에 익숙하지 않은 기척. 동쪽에서 울리는 멀고 낮은 울림. 투구 아래 움직이지 않는 기사의 눈이 그것을 감지했다. 서리가 맺힌 잔디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마상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투구는 무거웠고 말은 불안해 발굽으로 대지를 긁었다. 그들 뒤로 대오가 펼쳐졌다. 철제 갑옷을 입은 기사들, 긴 창을 들고 방패를 든 보병들. 몽고군의 침략에 맞서 모인 여러 나라의 군대. 실레지아의 헨리 공작의 깃발과 기사단의 십자가가 바람에 펄럭였다. 기사는 말 위에서 갑옷을 바로 잡았다. 쇠 장갑 아래 손가락이 마비되었다. 촉촉한 공기가 투구 틈새로 들어왔다. 자욱한 연무 너머에서 말굽 소리가 점점 뚜렷해졌다. 그들은 올 것이다. 멀리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사제는 군대 앞에서 무언의 기도를 올렸다. 기사들의 대열에 십자가를 그으며 지나갔다. 말들이 콧김을 내뿜었다. 쇠와 가죽, 말과 사람의 냄새, 피와 흙의 냄새가 공기 중에 섞였다. 바람이 연무를 흩트렸다. 동쪽 지평선 위로 그림자들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점과 선. 곧 그것은 형체가 되었다. 창과 궁수들의 띠. 그 뒤로 셀 수 없는 기병들. II. 몽골 기병대는 지평선을 따라 퍼져나갔다. 그들의 말은 작고 강인했다. 기수들은 깃발을 들었다. 바람은 그것들을 펄럭이게 했다. 먼지가 일었다. 말들의 콧김이 차가운 공기 속에 섞였다. 기사는 자신의 대열을 바라보았다. 길게 늘어선 방진.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전열의 핵심을 이루었다. 그 뒤로 보병들과 궁수들이 배치되었다. 헨리 공작의 깃발과 함께 수도원 기사단의 흰 방패와 붉은 십자가가 하늘에 펄럭였다. 사제는 성수를 뿌리며 기사들 사이를 지나갔다. 낮은 라틴어 기도가 바람에 흩어졌다. 기사들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들의 귀에는 이제 말굽 소리만이 가득했다. 헨리 공작이 말 위에서 검을 뽑았다. 그의 갑옷은 햇빛에 번쩍였다. 봄 햇살이 안개를 뚫고 대지를 비추었다. 기사는 자신의 창을 단단히 붙잡았다. 쇠 장갑 아래 손가락이 뻣뻣했다. 그는 방패를 단단히 잡았다. 그것은 무거웠다. 나무와 쇠, 가죽으로 만들어진 방패. 명령이 내려졌다. 말없이, 기사들은 진형을 갖추었다. 창이 낮게 내려앉았다. 방패가 들어올려졌다. 말들이 앞발을 들었다. 기사는 투구 너머로 적의 진영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만이 먼지를 일으켰다. III. 몽골군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느리게, 그리고 점점 빠르게. 그들은 덩어리를 이루지 않았다. 넓게 펼쳐져 물결처럼 진격했다. 활을 든 기병들이 앞에 나섰다. 화살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기사는 방패를 높이 들었다. 화살이 그의 갑옷과 방패에 부딪쳤다. 가벼운 충격. 그러나 연이은 충격. 말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기사는 말을 진정시켰다. 주변에서 몇몇 보병들이 쓰러졌다. 화살은 계속 쏟아졌다. 몽골 기병들이 갑자기 후퇴했다. 기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빠르게 말을 몰아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헨리 공작이 명령을 내렸다. 기사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말을 몰았다. 대지가 진동했다. 먼지가 피어올랐다. 기사는 말을 몰아 적을 쫓았다. 창을 곧게 겨누었다. 땅은 굳었고 말발굽 아래에서 갈라졌다. 광포한 추격. 몽골 기병들은 계속 뒤로 물러났다. 기사들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각자 더 빨리 적에게 도달하려고 했다. 그때 몽골 기병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 흩어졌던 그들이 다시 모였다. 화살이 다시 날아왔다. 이번에는 더 가까운 거리에서. 기사의 말이 화살에 맞아 비틀거렸다. 그는 급히 말에서 뛰어내렸다. 갑옷의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 대지는 딱딱했다. 주변에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말의 울음소리, 남자들의 외침이 뒤섞였다. 화살이 계속 하늘에서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갑옷을 뚫고 살을 파고들었다. 기사는 일어섰다. 그의 창은 부러졌다. 그는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IV. 몽골군이 좌우에서 몰려들었다. 그들은 넓은 반원을 그리며 유럽 기사들을 포위했다. 기사는 그제서야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가짜 후퇴였다. 이제 그들은 포위되었다. 그는 자신의 대열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대열은 이미 무너졌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들은 흩어져 각자 싸웠다. 보병들은 후퇴했다. 몽골 기병들은 그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화살은 계속 떨어졌다. 기사는 검을 들고 적에게 달려들었다. 한 몽골 기병과 맞닥뜨렸다. 그는 검을 휘둘렀다. 기병은 가볍게 피했다. 그들의 말은 빨랐다. 기병의 곡검이 그의 갑옷에 스쳤다. 갑옷이 저항했다. 기사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맞았다. 기병이 말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 다른 기병이 나타났다. 그리고 또 다른 기병. 그들은 끝없이 밀려왔다. 기사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의 갑옷은 무거웠다. 땀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투구 안은 뜨거웠다. 숨쉬기가 어려웠다. 주변에서 유럽 기사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그들의 무거운 갑옷은 움직임을 방해했다. 몽골 기병들은 빠르게 움직이며 공격했다. 그들은 원을 그리며 기사들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가까이 다가와 검으로 공격하고 다시 멀어졌다. 기사는 뒷걸음질 쳤다. 그의 발 아래로 시체가 있었다. 동료 기사의 시체. 그는 넘어지지 않으려 균형을 잡았다. 갑옷의 무게가 그를 끌어당겼다. 그는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V. 헨리 공작의 깃발이 쓰러졌다. 공작은 말에서 떨어졌다. 몽골 기병들이 그를 둘러쌌다. 기사는 그에게 가려 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 사이에 몽골 기병들이 가득했다. 사제가 십자가를 높이 들고 기도를 외쳤다. 화살이 그를 맞혔다. 그는 쓰러졌다. 십자가가 땅에 떨어졌다. 몽골 기병이 말발굽으로 그것을 짓밟았다. 기사는 계속 싸웠다. 그의 검은 몽골 기병의 가죽 갑옷을 뚫었다. 그러나 또 다른 기병이 그의 등을 공격했다. 곡검이 그의 갑옷 이음새를 찾아 파고들었다. 뜨거운 통증. 그는 흔들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전장은 이제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유럽 기사들은 각자 고립되어 싸웠다. 대열도, 진형도 없었다. 오직 개인의 싸움만이 남았다. 기사는 그가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적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검이 공기를 갈랐다. 몽골 기병들은 이제 전장을 완전히 지배했다. 그들은 흩어진 기사들을 하나씩 공격했다. 화살이 계속 떨어졌다. 곡검이 번쩍였다. 유럽 기사들은 하나둘 쓰러졌다. 기사는 무릎을 꿇었다. 갑옷이 너무 무거웠다. 피가 그의 다리를 타고 흘렀다. 그는 검을 놓지 않았다. 적이 다가왔다. 그는 마지막 힘을 모아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은 느렸다. 몽골 기병의 화살이 그의 투구 틈새를 파고들었다. 전장은 점차 조용해졌다. 유럽 기사들의 외침이 하나둘 사라졌다. 오직 말발굽 소리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만이 남았다. 그것도 곧 사라졌다. VI. 레그니차 평야는 다시 고요해졌다. 연무는 걷혔다. 봄 햇살이 전장을 비추었다. 그곳에는 이제 시체만이 남아있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들. 십자가를 든 사제. 보병들과 궁수들.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몽골군은 이미 사라졌다. 그들은 동쪽으로 향했다. 더 많은 마을을, 더 많은 성을 정복하기 위해. 갑옷이 햇빛에 반짝였다. 깃발은 바람에 흩날렸다. 부러진 창과 검이 대지 위에 흩어져 있었다. 까마귀들이 하늘에서 원을 그렸다. 그들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레그니차 평야는 다시 고요했다. 바람만이 마른 풀을 흔들었다. 대지는 피를 흡수했다. 구름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림자가 전장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 멀리 어딘가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마을의 종. 경고의 종. 하지만 이미 늦었다. 레그니차에서 유럽의 방어선은 무너졌다. 몽골군은 계속해서 서쪽으로 진격할 것이다. 바람이 불었다. 마른 풀이 흔들렸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었고 그림자가 길어졌다. 까마귀들이 내려앉았다.
• 깊은 곳의 물결 -공포단편소설5월 24일1. 언니의 방문 손잡이는 차갑고 축축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내 손바닥에 물기를 묻혔다. 손잡이를 돌릴 때 나는 미세한 저항을 느꼈다. 마치 방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문은 열렸고, 언니가 남긴 공간이 드러났다. 세 달 전, 언니는 강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사고라고 불렀지만, 유품을 정리하러 온 오늘까지도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날 밤 강변에서 발견된 것은 오직 언니의 원피스와 한 짝의 구두뿐이었다. 부모님은 견디지 못하고 도시로 떠났고, 나는 우리의 고향 집에 혼자 남겨졌다. 방은 습기로 가득했다. 6월의 햇살이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지만, 이상하게도 실내는 차갑고 어두웠다. 창문 너머로는 우리 마을을 관통하는 강이 보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검고 깊어 보였다. 바닥은 썩어가고 있었다. 목재가 물에 젖어 부풀고 뒤틀려 있었다. 벽지는 여기저기 들떠 있었고,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이상한 것은 이 방이 2층에 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습기가 스며드는 것일까? 언니의 책상 위에는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표지는 축축했고, 페이지는 물에 번져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강이 내게 말을 걸어. 밤마다. 창문 너머로. 물결 아래 뭔가가 있어. 그것이 내 이름을 불러. 날짜는 언니가 사라지기 하루 전이었다. 침대 옆 테이블에는 언니의 머리빗이 놓여 있었다. 빗살 사이로 검은 머리카락이 얽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놀랍게도 그것은 축축했다. 마치 방금 젖은 머리를 빗은 것처럼. 벽에는 알 수 없는 흔적들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손톱이 벽지를 파낸 자국이었다. 한 줄, 두 줄, 세 줄... 마치 언니가 벽 안에 있는 무언가를 파내려 했던 것처럼. 가장 이상한 것은 방 전체에 퍼져 있는 냄새였다. 강물과 썩은 나무의 냄새.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냄새. 나는 언니의 침대에 앉았다. 매트리스는 내 체중 아래서 물기를 뿜어냈다. 옷이 순식간에 축축해졌다. 하지만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불편함이 언니의 마지막 순간에 가까워지는 방법처럼 느껴졌다. 창밖으로 강이 보였다. 그것은 마을을 가로지르며 끝없이 흘러갔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그 강에서 놀았다. 언니는 항상 물을 두려워했다. 그런 언니가 강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창턱에는 작은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초록빛이 아닌 창백한 회색빛 이끼였다. 나는 그것을 만져보았다. 촉감이 이상했다. 마치 작은 손가락 같았다. 나는 흠칫 손을 뗐다. 그 순간, 이끼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미세하게.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방 안의 모든 것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곰팡이, 이끼, 벽지, 바닥... 모두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뭔가가 내 발목을 붙잡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느껴졌다. 축축하고 차가운 손가락이 내 피부를 감싸는 감각. 그날 밤, 나는 내 방에서 자려고 했지만, 결국 언니의 방으로 돌아갔다.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끌렸다. 언니의 흔적에, 그 방의 이상한 기운에. 언니의 침대에 누우니 옷이 다시 축축해졌다. 천장을 바라보자 작은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그것들은 중력을 무시한 채 위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귓가에 물소리가 들렸다. 마치 침대가 강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잠에 들기 직전, 나는 목소리를 들었다. 언니의 목소리였다. 내려와. 여기로. 강으로. 2. 다음 날, 나는 언니의 방을 더 자세히 조사했다. 벽지 아래에서 무언가가 자라고 있었다. 곰팡이와는 다른 무언가. 나는 손톱으로 벽지의 들뜬 부분을 조금 찢었다. 그 아래로 창백한 섬유질 같은 것이 보였다. 액체를 머금은 그것은 마치 피부 아래 근육 같았다. 옷장을 열자 언니의 옷들이 걸려 있었다. 모두 축축했다. 가장 안쪽에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언니가 사라진 날 입고 있던 것과 같은 원피스였다. 하지만 그것은 강에서 발견되었을 텐데.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일까? 원피스를 만지자 물기가 내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강물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또 다른 냄새. 언니의 냄새. 침대 밑을 살펴보니 작은 상자가 있었다. 열어보니 그 안에는 언니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모두 강가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마지막 사진에서 언니는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강물 위에 비친 언니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언니가 아니었다. 물 속에 비친 존재는 훨씬 길고 창백했다. 그 존재의 손가락은 비정상적으로 길었고, 반투명했다. 나는 그 사진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자 물 속의 존재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속 강물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나는 언니의 머리빗으로 내 머리를 빗었다. 빗살이 두피를 스칠 때, 이상한 감각이 몸을 타고 흘렀다. 시원하고 축축한 감각. 마치 물속에 있는 듯한. 거울을 보니 내 눈동자가 달라 보였다. 동공이 세로로 길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눈을 깜빡이자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착각이었을까? 밤이 되자 목이 말랐다. 침대 옆에 물을 떠다 놓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갈증이 심해졌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가 부엌의 수돗물을 마셨다. 한 컵, 두 컵, 세 컵... 하지만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밖으로 나갔다. 무의식적으로 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밤의 강은 낮과 달랐다. 표면 아래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달빛이 물결 위에서 일그러졌다. 강가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물을 떠올렸다. 그것은 차갑고 검었다. 냄새를 맡자 언니의 방과 같은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물을 마셨다. 그 순간, 무언가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시원하고 이질적인 존재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뱃속에 자리 잡았다. 물속에서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처음에는 내 반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언니였다. 아니, 언니처럼 보이지만 언니가 아닌 무언가였다. 그 존재는 물속에서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창백한 얼굴, 길고 투명한 손가락. 그리고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 함께 하자. 언니처럼. 강과 하나가 되자. 목소리는 내 머릿속에서 직접 들려왔다. 나는 몸을 후드득 떨며 일어났다. 집으로 달려가는 내내 등 뒤로 물소리가 따라왔다. 3.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이제 언니의 방에서 생활했다. 내 방은 더 이상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언니의 침대, 언니의 책상, 언니의 옷장... 그것들은 이제 내 것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것들의 일부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피부에 축축한 얼룩이 생겼다. 처음에는 손목에, 그다음에는 팔뚝에, 그리고 목과 가슴으로 번졌다. 그 얼룩은 살짝 푸르스름한 빛을 띠었고, 만지면 차갑고 미끈했다. 손톱 밑으로는 검은 실핏줄이 자라났다. 마치 작은 뿌리가 내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내 몸이 무언가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이상한 변화는 혀 밑에서 일어났다. 거울로 확인해보니 혀 아래에 작은 비늘 같은 조직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부드럽고 차가웠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 이상하게 변해간다고 수군거렸다. 가게에 갔을 때, 사람들은 나를 피했다. "저 아이 언니처럼 될까 봐 걱정이야,"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언니처럼 되어간다는 것이. 밤에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강 속에 있었다. 숨을 쉴 수 있었다. 물 속에서도 편안했다. 언니가 내 옆에서 유영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녀의 피부는 반투명했고, 머리카락은 수초처럼 물속에서 춤을 췄다. 그녀의 눈은 크고 검었으며,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있었다. 이제 곧이야, 언니가 말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시간.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침대는 완전히 젖어 있었다. 마치 강물 속에 누워 있었던 것처럼. 방의 변화도 점점 심해졌다. 벽에서 자라는 이끼는 이제 손가락 모양으로 뻗어 나왔다. 그것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물속에서 유영하는 것 같았다. 바닥의 썩은 나무는 이제 완전히 무르익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물이 스며 나왔다. 천장의 물방울들은 이제 위로 흐르는 것을 넘어서, 서로 모여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물의 움직임. 어느 날 밤, 나는 벽지를 완전히 뜯어냈다. 그 아래에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벽은 살아있었다. 창백한 살점과 같은 조직이 벽 전체를 덮고 있었다. 그것은 천천히 맥박치고 있었다. 만졌을 때 느낌은 살과 같았지만,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손톱으로 그 살점을 긁었다. 피가 아닌 진한 강물이 흘러나왔다. 그 액체는 내 손을 타고 흘러내렸고, 나는 충동적으로 그것을 핥았다. 맛은 짜고 금속성이었다. 언니의 냄새가 났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내 머릿속이 아니라 실제로 방 안에서. 거의 다 왔어, 동생아. 이제 곧 함께 할 수 있어. 나는 돌아보았지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변해 있었다. 내 눈은 이제 완전히 세로로 찢어져 있었다. 피부는 창백했고, 손가락은 길어져 있었다. 나는 입을 열어 혀를 내밀었다. 혀 아래의 비늘은 이제 전체 혀를 덮고 있었다. 나는 이제 거의 다 왔다. 언니와 함께 할 시간이 거의 다가왔다. 4. 보름달이 뜬 밤, 나는 강으로 향했다.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치 강이 나를 부르는 것처럼. 강가에 도착하자 물결이 심상치 않게 요동쳤다. 달빛 아래, 물속에서 형체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언니만이 아니었다. 수십, 아니 수백의 형체들이 물속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한때는 인간이었을 존재들. 물가에 서자 강물이 나를 향해 흘러왔다. 중력을 거스르며, 물은 기어올라 내 발을 적셨다. 차갑고 끈적한 감각.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물속에서 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변해 있었다. 피부는 물고기의 비늘로 덮여 있었고, 손가락은 지느러미로 변해 있었다. 그녀의 눈은 커다랗고 검었으며, 입은 너무 넓어 얼굴의 반을 차지했다. 이리 와, 동생아. 함께 하자. 강과 하나가 되자. 나는 망설임 없이 물로 걸어들어갔다. 물이 허리까지 차자, 언니가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갑고 미끈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고, 언니는 나를 물속으로 끌어당겼다. 수면 아래는 다른 세계였다. 어둡고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혀 아래의 비늘이 아가미처럼 기능하는 것 같았다. 언니는 나를 깊은 곳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강바닥을 지나, 더 깊은 어둠 속으로 헤엄쳤다. 그곳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강의 진정한 존재를. 그것은 형언할 수 없이 거대했다. 마치 도시 전체만큼 큰, 고대의 존재. 무수한 촉수와 눈, 입으로 이루어진 모호한 덩어리. 우리 마을의 강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존재의 일부였다. 그리고 이 존재는 오래전부터 우리 마을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가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야, 언니가 말했다. 우리는 언제나 이곳에 속했어. 육지는 우리의 고향이 아니었어. 그 순간, 나는 이해했다. 우리 가족이 왜 이 강가 마을에 살게 되었는지. 우리의 선조들이 왜 이 강을 숭배했는지. 그리고 언니와 내가 왜 항상 물에 이끌렸는지. 거대한 존재의 일부가 나를 향해 뻗어왔다. 그것은 내 피부를 감쌌고, 모든 구멍으로 들어왔다.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황홀했다. 나는 내 자신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육체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내 의식이 더 크고 오래된 무언가와 융합되는 것을. 그 과정에서, 나는 언니의 기억을 보았다. 그녀가 어떻게 강에 이끌렸는지, 어떻게 그것의 일부가 되었는지. 그녀의 공포와 고통, 그리고 마침내 찾은 평화.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나를 기다렸는지. 변화가 완료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내 피부는 반투명했고, 손가락은 지느러미로 변해 있었다. 내 시력은 날카로워져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외롭지 않았다. 언니가 내 옆에 있었고, 우리는 이제 더 큰 존재의 일부였다. 우리는 함께 강을 헤엄쳤다. 때로는 수면 가까이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우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물결의 일부일 뿐이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우리는 가끔 사람들을 부른다. 특히 외로움에 지친 영혼들을. 그들에게 강물의 속삭임이 들린다. 특히 비가 오는 밤에는. 5. 마을 사람들은 또 한 명이 강에서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에는 젊은 여자였다. 언니가 사라진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실종된 그녀의 동생이었다. 경찰은 그녀의 방을 조사했다. 언니의 방이었던 그곳은 이제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바닥은 썩어 구멍이 났고, 벽에는 기괴한 패턴의 곰팡이가 자라 있었다. 벽지는 모두 뜯겨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알 수 없는 얼룩들이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천장이었다. 그곳에는 마치 누군가가 거꾸로 바닥을 걸은 것처럼 젖은 발자국들이 있었다. 그 발자국들은 중앙에서 원을 그리며 뻗어 나갔고, 중앙에는 큰 물웅덩이가 있었다. 그 물은 강물과 같은 냄새가 났다. 침대 위에는 그녀의 일기장이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상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이제 함께해. 언니와 나. 그리고 강. 우리는 이제 하나야. 누구든 외로움을 느낀다면, 강가로 오세요. 우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경찰은 그것을 자살 메모로 해석했다. 언니의 죽음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여동생이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마을 노인들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이 마을의 강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고. 외로운 영혼들을 부르는 강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그들은 이제 두 자매가 그 존재의 일부가 되었다고 속삭였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가끔 강가에서 두 여자의 웃음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리고 보름달이 뜨는 밤, 강물 아래로 두 형체가 유영하는 모습을 본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강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특히 밤에는. 그들은 혹시 강이 자신들의 이름을 부를까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마을에서는 누군가가 실종된다. 주로 외롭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그들은 모두 강으로 향한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다.
• 만지케르트 -전쟁단편소설5월 23일아나톨리아의 황토색 평원은 아침부터 공기 자체가 먼지처럼 보였다. 태양은 피처럼 붉게 지평선 위로 떠올랐고 그 빛은 차갑고 무정했다. 불모의 대지는 모든 생명을 거부하는 것처럼 누워있었고 단지 바람만이 거기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케릴로스는 말을 타고 언덕 위에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동쪽으로는 시야가 끝없이 펼쳐졌다. 여기서 천 년을 본다 해도 풍경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가 밟고 있는 이 흙이 한때는 페르시아인들의 것이었고 그 전에는 히타이트인들의 것이었으며 그 이전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부족들의 것이었다. 이제는 비잔틴의 영토라 불렸다. 등 뒤에서 군대의 소음이 들려왔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말의 울음소리. 명령을 외치는 소리. 케릴로스는 그의 동료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은 비잔틴 제국의 용병들이었다. 프랑크족, 불가르족, 페체네크족, 아르메니아인, 그리고 그와 같은 그리스인들이 섞여 있었다. 그의 용병대장 아틸리오스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수십 번의 전투를 겪은 사내였다. 그의 얼굴은 상처로 덮여 있었고 왼쪽 눈은 흐릿했다. 어떤가. 아틸리오스가 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늘 그렇지.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항상 더 나빠진다. 아틸리오스는 웃었다. 그들은 해가 뜨자마자 행군을 시작했다. 이만 명의 군대는 느리게 움직였다. 땅은 단단했고 발자국이 만들어낸 먼지는 구름처럼 하늘로 올라갔다. 케릴로스는 용병대의 중간쯤에 있었다. 그는 주변을 살폈다. 전방에는 황제의 친위대가 있었다. 그들의 갑옷은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그들은 황금과 자주색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는 친위대의 뒤에서 로마노스 황제를 볼 수 있었다. 그는 훤칠한 체구의 남자였고 수염이 짙었다. 먼 언덕에서 먼지 구름이 보였다. 셀주크의 정찰병일 것이다. 그들은 지난 사흘간 그들을 따라왔다. 그들은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가끔 먼지 구름만이 그들의 흔적이었다. 그들은 말에서 태어나고 말 위에서 죽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람과 먼지처럼 이동했고 화살을 쏘았다. 케릴로스의 옆에서 걷던 젊은 용병이 물었다. 그는 열아홉쯤 되어 보였고 얼굴에 흉터 하나 없었다. 당신은 셀주크인들과 싸워본 적이 있습니까? 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 어떻게 다릅니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죽음은 신의 뜻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싸우지만 그들은 죽기 위해 싸운다. 젊은 용병은 침묵했다. 아침이 저물고 해가 높이 떠올랐다. 열기가 대지를 뒤덮었다. 남자들의 갑옷 아래로 땀이 흘렀다. 말들은 지쳐갔다. 물은 점점 줄어들었다. 군대는 느리게 전진했다. 케릴로스는 지형을 살폈다. 땅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남쪽에는 산이 있었고 북쪽에는 강이 있었다. 그들은 좁아지는 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함정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임무는 싸우는 것이었지 조언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마노스 황제와 그의 장군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같은 용병대의 키가 큰 불가르인이 그에게 물었다. 그의 이름은 쿠벤이었고 그는 세 명의 남자를 맨손으로 죽였다고 자랑했다. 이 황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 같나? 쿠벤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제국을 구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제국은 이미 죽었다. 우리는 그저 시체의 일부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럼 왜 여기 있지? 너와 같은 이유다. 돈 때문이다. 쿠벤은 웃었다. 오후가 깊어갈 무렵 그들은 물을 찾았다. 작은 개울이었다. 말들이 갈증을 풀었고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물은 흙탕물이었다. 케릴로스는 물을 마시고 얼굴을 씻었다. 그는 물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은 행군을 계속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그들은 만지케르트 근처의 평원에 도착했다. 그곳은 넓었지만 그들이 원하던 곳은 아니었다. 황제는 진영을 치라고 명령했다. 남자들은 지쳐 있었고 목이 말랐다. 그들은 천막을 세우고 말에게 물을 주었다. 케릴로스는 자신의 검을 닦았다. 검은 무딘 상태였지만 여전히 칼날은 예리했다. 그는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진영 주변으로 불이 켜졌다. 어둠이 내리자 남자들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내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승리에 대해.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아틸리오스가 케릴로스 옆에 앉았다. 그는 그에게 포도주를 건넸다. 케릴로스는 그것을 마셨다. 포도주는 신맛이 났지만 따뜻했다. 내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아틸리오스가 물었다. 지금까지와 같을 것이다. 사람들이 살고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누가 이길 것 같나? 이기는 자가 있을까.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 단지 더 많이 잃은 자와 덜 잃은 자가 있을 뿐이다. 현명한 말이군. 너는 항상 그런 식으로 생각했나? 항상은 아니다. 한때 나는 명예와 영광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그것들은 허상이었다. 명예는 죽은 자에게 아무 의미가 없고 영광은 산 자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을 위해 싸우나? 살아남기 위해. 아틸리오스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날 밤, 케릴로스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별들이 차갑게 빛났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별들은 수천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모든 남자는 언젠가 죽는다. 아버지는 말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다. 그리고 아버지는 노르만인들과의 전투에서 죽었다. 케릴로스는 그의 시신을 땅에 묻었다. 그는 아무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새벽이 오기 전, 그는 동쪽에서 기병대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셀주크의 기병대는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들은 새벽의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아침 안개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비잔틴 진영 주위를 빙빙 돌며 화살을 쏘았다. 비잔틴 궁수들이 응사했지만 바람을 쏘는 것과 다름없었다. 셀주크인들은 너무 빨랐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케릴로스는 갑옷을 입고 검을 들었다. 그의 주변으로 남자들이 쓰러졌다. 화살에 맞은 자들. 그는 방패를 들어올렸다. 방패에 화살 하나가 박혔다. 젊은 용병이 그의 옆에서 쓰러졌다. 화살이 그의 목을 관통했다. 그는 케릴로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는 입을 열어 뭔가 말하려 했지만 피만 흘렀다. 케릴로스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또 한 명이 죽었다. 로마노스 황제는 중장기병대를 이끌고 반격을 시도했다. 그들은 무거운 갑옷을 입고 긴 창을 든 채 셀주크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셀주크인들은 마치 연기처럼 사라졌다. 중장기병대는 그저 빈 들판을 향해 돌진했고 점점 더 멀어졌다. 갑자기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셀주크 기병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이제 화살을 쏘지 않았다. 그들은 곡도를 들고 돌진했다. 그들은 마치 사막의 폭풍처럼 비잔틴 진영을 뒤덮었다. 쇠가 쇠를 부딪치는 소리. 말의 울음 소리. 남자들의 비명. 세상은 온통 소음과 혼돈으로 가득 찼다. 케릴로스는 싸웠다. 셀주크 기병 하나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방패로 말의 머리를 가격했다. 말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기병이 땅에 떨어졌다. 케릴로스는 그의 목을 베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케릴로스의 주변에서 전투가 흐트러졌다. 더 이상 대형이나 명령이 없었다. 그저 살아남으려는 몸부림만이 있었다. 쿠벤은 셀주크인 두 명을 맨손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세 번째 셀주크인의 화살이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쿠벤은 쓰러졌다. 그는 죽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아틸리오스는 검과 방패로 싸우고 있었다. 그는 혼자서 다섯 명의 셀주크인을 물리쳤다. 그러나 여섯 번째가 그의 등 뒤에서 접근했다. 케릴로스는 그것을 보았지만 너무 멀었다. 그는 경고의 외침을 보냈지만 전장의 소음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아틸리오스는 등 뒤에서 날아온 창에 찔렸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싸웠다. 그는 쓰러진 채로도 두 명의 셀주크인을 더 죽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쓰러졌다. 케릴로스는 그때 그것을 보았다. 북쪽에서 비잔틴 군대의 일부가 뒤돌아 자신들의 동료를 공격하고 있었다. 용병대 몇 개 부대와 아르메니아 부대가 이탈하여 제국군을 등 뒤에서 공격했다. 그는 그들이 셀주크에 매수되었거나 단순히 패배를 예감하고 살아남는 쪽을 택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배신자들의 선두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그는 다른 용병대의 지휘관이었다. 케릴로스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안드로니코스. 그는 유명한 전사였고 많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의 동료들을 죽이고 있었다. 그의 검은 비잔틴 병사들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전장은 이제 완전한 혼돈에 빠졌다. 케릴로스는 더 이상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을 베었고 그 외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한 남자가 황금 갑옷을 입고 여러 셀주크 전사들에게 둘러싸인 것을 보았다. 로마노스 황제였다. 황제는 용감하게 싸웠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마침내 그의 말이 쓰러졌고 황제는 땅에 떨어졌다. 셀주크인들이 그를 사로잡았다. 케릴로스는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로마노스 황제는 이제 포로였다. 비잔틴 군은 흩어졌다. 일부는 도망쳤고 일부는 항복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전장에서 죽었다. 케릴로스는 자신이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전장에서 물러나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평원은 시체로 뒤덮여 있었다. 비잔틴인과 셀주크인 모두. 죽음은 모든 차이를 지워버렸다. 로마노스 황제는 알프 아르슬란 술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술탄은 말에서 내려와 황제에게 다가갔다. 그는 황제를 일으켜 세웠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었다. 술탄은 관대함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포로가 된 황제를 존중했다. 케릴로스는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는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피로 덮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그것을 닦았다. 검은 다시 빛났다. 그는 그것을 칼집에 넣었다. 그는 서쪽을 향해 걸었다. 그의 검은 이제 깨끗했지만 그의 갑옷은 여전히 피로 덮여 있었고 그의 갑옷은 찢어져 있었다. 전장에서 멀어지면서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앞으로 또 다른 전투가 있을 것이다. 그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우물을 찾았다. 물은 차갑고 맑았다. 그는 몸을 씻었다. 피와 먼지가 씻겨 내려갔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확인했다. 몇 군데 긁힌 자국과 멍이 있었지만 심각한 부상은 없었다. 그는 마을에서 버려진 음식을 찾았다. 빵 몇 조각과 말린 고기. 그는 배를 채웠다. 그리고 그는 휴식을 취했다. 처음으로 그는 깊은 잠에 빠졌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하루가 지나 있었다.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길을 가는 동안 그는 다른 생존자들과 마주쳤다. 모두 비잔틴 군의 잔존 병력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들은 모두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그는 작은 수도원에 도착했다. 그곳의 수도사들은 그를 맞아주었다. 그들은 그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했다. 그들은 전투에 대해 물었다. 황제의 운명에 대해. 제국의 운명에 대해. 케릴로스는 그들에게 말했다. 수도사들은 그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밤에 수도원의 종이 울렸다. 그것은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수도사들은 모여 기도했다. 그들은 황제를 위해 기도했다. 제국을 위해. 모든 죽은 자들을 위해. 케릴로스는 기도하지 않았다. 다음 날 그는 다시 길을 떠났다. 수도사들은 그에게 음식과 물을 주었다. 그들은 그에게 축복을 내렸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한 달 후,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 도시는 변해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황제가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이 이미 도시에 퍼져 있었다. 그는 항구로 향했다.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아나톨리아의 대지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먼지와 피가 섞인 땅 위로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는 계속 걸었다.
• 뭔가 착각하는거같은 현재 일본원정 나섰다는 K- 제작사들5월 21일소설가, 각본가, 감독, 크리에이터로 일본 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하시즈메 슌키가 각본과 연출을 맡는다.
• 의사 사촌이 망상소설 쓰고있음5월 20일출처: 도탁스 (DOTAX) | 의사 사촌이 망상소설 쓰고있음 - Daum 카페
• 피의 점토 -호러단편소설5월 20일1. 하얀 손가락 그는 진흙을 발견했다. 시간에 잠식된 고대 유적지의 깊은 지하실에서.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이름 없는 공간에서. 진흙은 검붉은 색이었다. 마치 수천 년의 기다림 속에서도 말라붙지 않은 피처럼. 그는 그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감쌌다. 감촉은 따뜻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죽은 것처럼. 그 따스함이 생명의 마지막 고별인사 인 것 처럼. 이 진흙은 기억을 가진 자의 피를 흡수할 수 있다고 했다. 그 기억 속 인물의 형상을 빚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믿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믿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손가락 끝으로 진흙을 어루만지는 동안, 그는 그녀를 생각했다 "세희야." 검게 변색된 점토 위로 그의 피가 방울져 떨어졌다. 붉은 물이 스며들자마자 점토는 욕심스럽게 그것을 빨아들였다. 남자는 반쯤 감긴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빛을 잃어가는 의식 속에서도 그는 버티고 서 있었다. 돌연 점토 위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아직 형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숨을 쉬고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세희야." 그가 다시 속삭였다. 방 안에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남자의 가쁜 숨소리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눈이 다시 감기려는 순간, 점토 덩어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세한 진동이었으나, 곧 전체가 요동쳤다. 그리고 마침내—그것은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손가락이었다. 살이 없는 뼈대가 먼저 형성되더니, 점토가 그 위로 타고 올라가 살을 덮었다. 피부는 창백했고, 손톱은 아직 없었다. 그러나 손가락은 완벽했다. 세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이었다. "드디어..." 남자의 입술이 경이로움에 떨렸다. 그것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2. 첫 번째 얼굴 손목이 생겼고, 팔이 생겼다. 그리고 어깨, 목, 그리고 마침내 얼굴이 형성되었다. 세희의 얼굴은 남자의 기억 속보다 더 완벽했다. 피부는 도자기처럼 매끄러웠고, 눈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검은 진주 같았다. 남자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녀의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했다. "정훈아." 세희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정확히 그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달콤하면서도 약간은 쉰 듯한, 그러나 항상 그를 위로하던 그 목소리. 정훈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돌아왔구나. 돌아왔어." 세희는 미소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정훈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밝고 따스했다. 세희가 천천히 손을 뻗어 정훈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길은 차가웠지만, 정훈은 그 감촉에 전율했다. "보고 싶었어, 정훈아." "나도. 미치도록." 점토의 세희는 정훈의 품에 안겼다. 그녀의 몸은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다. 다리는 여전히 점토 덩어리와 연결되어 있었고, 등 뒤로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살점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정훈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녀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많은 피가 필요해." 세희가 속삭였다.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줘." 정훈은 망설임 없이 팔뚝을 드러냈다. 이미 바늘자국으로 가득한 팔이었지만, 그는 다시 한번 바늘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피가 다시 한번 점토 위에, 세희의 미완성된 몸 위에 떨어졌다. 3. 기억의 결핍 세히가 돌아온 지 3주가 지났다. 정훈은 그녀에게 6번의 수혈을 했다. 그녀의 몸은 이제 완전했다. 그러나 정훈의 몸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다. 창백한 안색, 떨리는 손, 그리고 끊임없이 흐르는 식은땀. 그는 의자에 앉아 세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비가 내리는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정훈이 물었다. 세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종종 이렇게 말이 없었다. 처음에는 정훈도 그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침묵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세희야." 그가 다시 불렀다. "비가 오면 우리 항상 케이크를 사 먹었잖아." 세희가 말했다. "근데 무슨 케이크였지? 기억이 안 나." 정훈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티라미수였다. 세희가 가장 좋아하던 디저트. 어떻게 그녀가 그것을 잊을 수 있을까? "티라미수야." "아, 맞다. 티라미수." 그녀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공허했다. "근데 난 티라미수를 좋아했었나?" 정훈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자신의 피로 세희를 만들었다. 자신의 기억 속 세희를 재현했다. 하지만 정훈의 기억은 불완전했다. 그는 세희와의 행복한 순간만을 기억했다. 그녀가 좋아하던 음식, 그녀의 습관, 그녀의 취향—그것들은 모두 정훈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있었다. "좋아했어." 정훈이 대답했다.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였어." 세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눈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정훈은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여전히 차가운 손이었다. "오늘 너한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있어." 정훈은 천천히 레코드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렸다. 바늘이 레코드 위에 닿자 부드러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세희와 그가 처음 만났을 때 함께 들었던 노래였다. "기억나?" 정훈이 물었다. 세희는 조용히 음악을 듣다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기억이 안 나." 정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의 팔뚝을 바라보았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하지만 세희를 위해서라면, 그는 기꺼이 더 많은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괜찮아. 기억을 되찾게 해줄게." 4. 완전한 복제 정훈의 기억 속 세희는 완벽했다. 항상 웃고, 항상 따뜻하고, 항상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실제 세희는 달랐다. 그녀도 웃었지만, 때로는 화를 냈다. 그녀도 따뜻했지만, 때로는 차갑게 돌아섰다. 그녀도 그를 사랑했지만, 때로는 그를 미워했다. 정훈은 점점 더 진실한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세희와의 첫 싸움, 그녀가 울던 밤, 그녀가 문을 쾅 닫고 나가던 날. 그는 그 모든 기억을 담아 피를 흘렸다. 그리고 점토의 세희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세희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정훈은 문을 닫으며 피곤한 미소를 지었다. "일이 많았어. 미안." "항상 그 말뿐이야. 미안하다고. 근데 정말 미안해?" 그녀의 질문에 정훈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것은 새로운 세희였다. 더 이상 기억 속의 완벽한 연인이 아니라, 실제의, 인간적인 세희였다. "정말 미안해." 정훈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세희는 한동안 그를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들어와." 그들은 이제 진짜 연인처럼 싸우고, 화해하고,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정훈은 점점 더 많은 기억, 더 많은 진실을 세희에게 주었다. 그리고 세희는 점점 더 진짜 세희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훈의 몸은 계속해서 약해졌다. 어느 날 밤, 정훈은 고열에 시달리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세희는 그의 이마에 차가운 수건을 올려주었다. "이제 그만해." 세희가 말했다. "더 이상 피를 흘리면 안 돼." 정훈은 희미하게 웃었다. "하지만 네가 필요하잖아. 네가 존재하려면 내 피가 필요해." 세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럼 나는 사라지는 게 나아. 네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정훈은 천천히 손을 뻗어 세희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니? 그렇게 쉽게 날 떠나려고?" 세희는 그의 말에 얼어붙었다. 그것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정훈이 했던 말이었다. 그때 세희는 무엇이라고 대답했었지? "쉽지 않아." 세희가 속삭였다. "하지만 가야 해. 우리 둘 다를 위해서." 정훈의 눈에 분노가 번쩍였다. "또 날 버리려고? 세희야, 난 널 위해 모든 걸 바쳤어. 내 피, 내 생명, 내 모든 것을!" 그는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세희를 붙잡았다. 그의 손아귀는 생각보다 강했다. 세희는 놀라서 뒤로 물러섰지만, 정훈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넌 가지 못해. 절대로." 5. 원망의 피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정훈은 세희를 집 안에 가두었고, 세희는 탈출을 시도했다. 그들은 매일 밤 싸웠다. 그리고 매일 밤 정훈은 피를 흘렸다. 이제 그의 피는 사랑이 아니라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 날 떠났어?" 정훈이 물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왜 내게 이별을 통보했지?" 세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창문 밖만 바라보았다. "대답해!" 정훈이 소리쳤다. "난 널 사랑했어." 세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무 질식할 것 같았어. 넌 날 너무 옭아매려고 했어." 정훈은 비웃었다. "그래서 다른 남자에게 간 거야?" 세희의 눈이 커졌다. "무슨 말이야?" "알아, 세희야. 다 알아. 네가 나를 떠난 진짜 이유를. 네가 다른 남자를 만난 것도." 세희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정훈아, 난 그런 적 없어." "거짓말 마!" 정훈이 탁자를 내리쳤다. "난 봤어. 너희 둘이 카페에서 만나는 걸. 내가 먼저 보낸다고 했을 때, 넌 이미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던 거야!" 세희는 침묵했다. 그녀의 기억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정훈의 것이었다. 그가 믿는 것이 그녀의 진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그땐 혼란스러웠어." 정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바늘을 집어들었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야, 세희야. 내 남은 피를 다 줄게. 그리고 넌 완전한 진실을 알게 될 거야."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의 동맥을 갈랐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세희는 비명을 지르며 그를 막으려 했지만, 정훈은 그녀를 밀쳐냈다. 그의 피가 세희의 몸 위로, 점토 위로 쏟아졌다. "이제 알겠지," 정훈이 속삭였다. "네가 얼마나 날 배신했는지." 세희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피부가 변색되었다. 붉은 핏줄이 그녀의 몸 전체를 타고 올라갔다. 그녀의 눈이 검게 변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정훈은 웃었다. 그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내가 이룬 것을 봐. 내가 만든 네 모습을." 세희는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그녀는 새로운 기억을 얻고 있었다. 정훈이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도 부정했던 기억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진실을 보았다. "난 죽지 않았어," 세희가 말했다. "난 살아있어." 정훈의 미소가 사라졌다. "뭐?" "난 살아있어, 정훈아. 넌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난 그저 널 떠난 것뿐이야. 난 지금도 살아있어." 정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넌 죽었어. 교통사고로. 내가 널 살리지 못했어." 세희는 이제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검붉게 변했고, 그녀의 눈은 검은 구멍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세희의 것이었다. "그건 네 망상이야. 넌 날 잃은 걸 받아들이지 못했어. 그래서 내가 죽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한 거야. 하지만 진실은, 난 그저 널 떠난 것뿐이야. 그리고 난 지금 행복해." 정훈은 마지막 힘을 다해 세희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의 다리는 힘을 잃었고,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세희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넌 날 붙잡으려고 했어,"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난 자유로워지고 싶었어. 그게 우리가 헤어진 이유야." 정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거짓말이야..." 세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난 진실을 알아. 그리고 난 그녀를 찾을 거야. 진짜 나를." 6. 원본의 죽음 세희—점토의 세희는 미치도록 오랜 시간 원본을 추적했다. 그녀는 정훈의 기억 속에 담긴 모든 단서를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원본을 찾아냈다. 진짜 세희는 서울 외곽의 조용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새로운 남자와 함께. 점토의 세희는 그들의 집을 밖에서 지켜보았다. 그녀는 원본이 웃는 모습, 울는 모습, 사랑하는 모습을 모두 목격했다. 그것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거울 속 자신은 정훈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저녁, 점토의 세희는 마침내 행동했다. 그녀는 집 안으로 침입했다. 원본은 혼자 있었다. 그녀의 새 남자는 출장을 간 상태였다. "누구세요?" 원본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토의 세희와 똑같았다. "날 알아보지 못해?" 점토의 세희가 대답했다. 원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복제본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공포로, 그다음에는 혼란으로. "이게 무슨..." "정훈이 날 만들었어," 점토의 세희가 설명했다. "그는 널 너무 사랑했어. 하지만 넌 그를 버렸지." 원본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정훈이... 그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는 날 만들었어. 너의 복제본을. 그는 네가 죽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넌 살아있었지. 넌 그를 떠난 거였어." 원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난 그를 떠날 수밖에 없었어. 그는 나를 질식시켰어. 그는 나를 소유하려고 했어." 점토의 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이제 나도 그가 어땠는지 기억나. 그의 집착, 그의 질투, 그의 통제욕..." 원본은 조금 안심한 듯 보였다. "그래서 넌 날 찾아온 거야? 나한테 뭘 원해?" 점토의 세희는 천천히 미소지었다. 그것은 기이하게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녀의 눈은 여전히 검은 구멍 같았다. "난 네 인생이 필요해." 그녀는 순식간에 원본에게 달려들었다. 원본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점토의 세희는 원본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아귀는 점토로 만들어졌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미안해," 점토의 세희가 속삭였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네가 죽어야 해." 원본의 눈에서 생명이 사라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점토의 세희는 천천히 원본의 시체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그녀는 원본의 피를 모았다. 그러나 곧 그녀는 끔찍한 진실을 깨달았다. 죽은 자의 피에는 기억이 없었다. 7. 복제의 복제 점토의 세희는 원본의 옷을 입고, 원본의 집에 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원본의 삶을 완벽하게 복제하려 했다. 그러나 기억 없이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녀는 점점 더 쇠약해졌다. 그녀의 몸은 서서히 점토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원본의 남자가 출장에서 돌아왔다. 그의 이름은 준호였다. "세희야, 보고 싶었어." 준호가 말했다. 그는 점토의 세희를 끌어안았다. 점토의 세희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그의 심장박동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준호의 피에는 세희의 기억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가 사랑했던 세희의 기억. "나도 보고 싶었어," 점토의 세희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거칠었다. 준호는 그녀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 걸렸어?" "조금 아파." 그녀가 대답했다. "준호야, 내가 피를 조금만 봐도 될까?" 준호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 "그게... 내가 빈혈 검사를 해야 하는데, 병원에 가기 전에 확인해보고 싶어서." 준호는 의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결국 동의했다. 그는 부엌에서 칼을 가져와 손가락을 살짝 베었다. 피가 방울져 흘렀다. 점토의 세희는 숨을 고르지 못했다. 그녀는 준호의 피를 받아 마셨다. 순간, 그녀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이 다시 검게 변했다. 준호는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세희야, 무슨 일이야?" 점토의 세희는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세희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준호가 기억하는 세희의 웃음 소리였다. "난 세희가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난 세희의 복제본이야. 그리고 이제, 네 피와 함께, 난 더 완벽한 세희가 될 거야." 준호는 도망치려 했지만, 점토의 세희는 그를 붙잡았다. 그녀는 그의 팔을 붙잡고 더 깊게 베었다. 피가 쏟아져 나왔다. 점토의 세희는 그 피를 자신의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피부는 점차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은 다시 검은 진주 같은 색으로 변했다. "제발," 준호가 애원했다. "그만해." 점토의 세희는 잠시 멈추었다. 그녀의 눈에는 이제 혼란이 가득했다. 준호의 피를 통해, 그녀는 준호와 원본 세희 사이의 관계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 그들의 행복... 그것은 정훈과 세희의 관계와는 완전히 달랐다. 점토의 세희는 손을 떼고 준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행복했어," 그녀가 속삭였다. "너와 함께."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정훈은 그녀를 소유하려고 했어," 점토의 세희가 계속했다. "하지만 넌 그녀를 자유롭게 해줬어." 점토의 세희는 천천히 준호에게서 물러났다. 그러나 너무 많은 피를 흘린 준호는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점토의 세희는 그를 붙잡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상처를 붕대로 감싸주었다. "살아," 그녀가 속삭였다. "그녀는 네가 행복하길 원했을 거야." 8. 점토의 귀환 준호는 깨어났을 때,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옆에는 간호사가 서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그가 물었다. "당신 여자친구가 119에 신고했어요," 간호사가 대답했다. "당신이 자살을 시도했다고요." 준호는 혼란스러웠다. "자살이라니요? 그건 아니었어요. 그녀가... 그녀가 내 피를..." 간호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안정을 취하세요. 의사 선생님이 곧 오실 거예요." 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본 것은 정말 세희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그의 말을 믿을까? 퇴원 후, 준호는 조심스럽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희—혹은 그녀로 자신을 속였던 존재는 사라졌다. 그러나 침실 바닥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점토 덩어리였다. 그것은 이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준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점토 덩어리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쪽지였다. "준호에게. 난 진짜 세희가 아니야. 난 한 남자의 집착과 광기가 만들어낸 복제품일 뿐이야. 하지만 네 피를 통해, 난 진짜 세희의 행복을 보았어. 그녀는 널 정말 사랑했어. 부디 그녀를 잊지 말아줘. 그리고... 미안해." 준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점토 덩어리를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그는 울기 시작했다. 세희를 위해, 그리고 그녀의 복제본을 위해. 9. 새로운 손가락 몇 달 후, 준호는 세희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경찰은 그녀의 시체를 발견했고, 준호는 장례식을 치렀다. 그는 이제 홀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준호는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침실에서 들려오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점토 덩어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손가락이었다. 준호는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새로 생긴 상처가 있었다. 그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피를 점토에 바른 것이 분명했다. 손가락은 계속해서 자라났다. 그리고 준호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공포와 기대가 뒤섞인 감정으로. "세희야,"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점토는 그에게 응답했다.
• 투르 푸아티에 -전쟁단편소설5월 19일#. 먼지와 피의 길 하늘은 못 박힌 듯 고요했다. 새들은 떠나고 없었다. 공기는 씻은 뼈처럼 희미한 푸른빛을 띠었다. 루아르 남쪽, 전투를 눈앞에 둔 어느 들판이었다. 이름 없는 베르베르 기병은 고개를 들어 텅 빈 하늘을 보았다. 그의 검은 말은 고개를 숙인 채 마른 풀을 잘근거렸다. 며칠을 달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먼지가 폐부에 쌓이고 피 맛이 입가에 맴돌았다. 기병대는 약탈을 멈추라는 전갈을 받았다. 이제 북쪽으로, 더 북쪽으로 향할 뿐이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왜 가는지.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명령이 있을 뿐. 그의 손은 오래된 칼자루를 더듬었다. 가죽은 닳아 맨들맨들했다. 햇볕에 그을린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 진군 그는 말을 몰았다. 말발굽 아래 먼지가 부옇게 일었다. 길가에서 아이들이 돌팔매질을 했다. 돌멩이 하나가 그의 철제 투구를 때리고 튕겨 나갔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길가에 나뒹구는, 머리가 잘린 수도사의 시체를 지나쳤다. 부패한 살점 위로 파리 떼가 윙윙거렸다. 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침묵 속에 행군했다.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무기 부딪히는 소리만이 유일한 음악이었다. 햇볕은 뜨거웠고, 물은 부족했다. 때때로 불탄 마을의 잔해를 지났다. 검게 그을린 벽, 텅 빈 창문 구멍. 그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은 희미했다. 신은 어디 계신가.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질문할 기력도, 의지도 없었다. 다만 전진할 뿐. 말 잔등 위에서 흔들리며, 끝없이 펼쳐진 이국의 땅을 응시할 뿐이었다. #. 야영 투르 인근, 강물이 느리게 흐르는 곳에 진을 쳤다. 지도자는 병사들을 모았으나 긴 연설은 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천국을 말하지 않았다. 오직 검을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검을 쥐어야 할 손에 대해. 병사들은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딱딱하게 구운 양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기름이 불꽃 위로 떨어지며 치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의 옆에는 아직 앳된 얼굴의 동료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는 떨고 있었다. 죽음에 대해 중얼거렸다. 내일이면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마른 고기를 씹어 삼켰다.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바람이 불었다. 풀잎 스치는 소리가 죽은 자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그는 얇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차가운 땅바닥에 누웠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으나, 그 별빛은 온기를 주지 못했다. #. 전열 프랑크군은 고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숲을 등지고, 마치 땅에서 솟아난 바위들처럼 굳건해 보였다. 아침 햇살에 그들의 투구와 창끝이 번뜩였다. 말들은 불안한 듯 콧김을 내뿜고 앞발을 굴렀다. 바람은 싸늘했고, 풀잎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첫 번째 돌격 명령이 떨어졌다. 북소리가 심장을 두드렸다. 이름 없는 그는 창을 고쳐 잡고 말을 몰아 달렸다. 수백, 수천의 기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언덕을 향해 달려들었다. 땅이 울렸다. 프랑크 보병들의 방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대한 철갑의 짐승처럼 그들은 버티고 섰다. 그의 첫 번째 창은 적의 방패에 부딪혀 부러졌다. 두 번째 창은 적의 방패 깊숙이 박혔으나, 그걸로 끝이었다. 말들이 뒤엉키고 비명을 질렀다. 피 냄새가 진동했다. #. 함락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지휘관 압둘 라흐만 알-가피키가 전사했다는 소문이 번개처럼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속삭임이었으나, 곧 공포에 질린 외침으로 변했다. 진영 후방이 약탈당하고 있다는 외침도 들려왔다. 혼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병사들은 동요했고, 몇몇은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는 휘말리지 않았다. 싸웠다. 도망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의 칼은 적의 살을 베고 뼈를 부쉈다. 적의 칼 또한 그의 갑옷을 찢고 살갗을 파고들었다. 고통은 무감각했다. 어느 순간, 거대한 충격과 함께 그는 말에서 떨어졌다. 땅이 그를 받아 안았다. 외마디 비명도 없었다. 다만 풀잎이 피를 받아내기 위해 몸을 굽힐 뿐이었다. 칼날이 그의 어깨를 깊숙이 갈랐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 침묵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죽음과 흡사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싸움은 끝나 있었다. 사방은 시체와 부서진 무기들로 가득했다. 그의 주변에는 까마귀 떼와 차가운 침묵만이 존재했다. 하늘은 여전히 높고 푸르렀으나,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였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어깨의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간신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슬람 진영의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철수했다. 그를 남겨두고. 프랑크 땅 한복판에, 그는 이방인으로 홀로 남겨졌다. 그는 이제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흐릿했다. #. 기도의 부재 그는 숲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며칠을 헤맸는지 알 수 없었다. 굶주림과 갈증, 상처의 고통이 그를 따라다녔다. 누구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는 잊혀진 존재였다. 어느 해 질 녘, 그는 쓰러질 듯한 몸을 이끌고 작은 공터에 다다랐다. 마지막 힘을 다해 메카를 향해 절을 하려 했다. 그러나 방향을 알 수 없었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 핏빛 노을을 만들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모든 방향이 똑같아 보였다. 잊혀진 자에게 동쪽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종교, 전쟁, 민족, 이름, 전설. 그 모든 것이 이제 그의 뒤편으로 아득히 지나가 버렸다. 결국 그는 이름 모를 들판, 비에 젖은 차가운 땅 아래 묻혔다. 무덤도, 비석도 없이. 그의 마지막 숨결은 한 줌 바람이 되어 낯선 땅의 풀잎을 스치고 사라졌다. 하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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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먼지 -sf호러단편소설5월 16일. 탐사 차량이 또 하나의 융기된 지형을 넘었다. 크레이는 엔진을 껐다. 거대하고 굴복하지 않는 침묵. 붉은 평원 위로 상처처럼 펼쳐진 하늘. 그는 움직이지 않고 조종석에 앉아 침묵과 공허를 기록했다. 화성에서의 또 하나의 날. 탐사 차량의 시스템만이 그의 아래에서 낮게 진동했다. 사방 백 마일 안에 유일한 소리. 그는 프로토콜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멀리 나왔다. 임무통제는 이 위반을 기록하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들 중 최고였다. 항상 그랬다. 규율적이고 절차에 철저했다. 단 한 번도 임무 매개변수에서 벗어난 적 없는 모범적인 우주비행사. 그러나 무언가가 그를 바깥으로, 지도에 표시된 영역 너머로, 다른 이들이 모험한 곳보다 더 먼 곳으로 부르고 있었다. 크레이는 붉은 먼지 위로 발을 내디뎠다. 감소된 중력 속에서 우주복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인공 공기를 들이마시며 끝없이 펼쳐진 무관심한 풍경을 응시했다. 변하지 않는 붉은 지평선. 차갑고 먼 태양. 진공이 생명체처럼 그의 헬멧을 누르고 있었다. 그때 그는 느꼈다. 존재가 아닌 부재. 그 깊이가 실제 질량이 있을 것 같은. 우주의 순수한 공허함, 완전한 침묵이 그가 전에는 결코 알아채지 못했던 폭력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주가 단순히 존재하는 방식. 의도나 악의 없이. 그러나 그 완전한 무관심 속에서도 인간적인 것을 모두 무력화시키는. 인류가 나타나기 수십억 년 전부터 정확히 이런 식으로 존재해 왔던. 인류가 사라진 후에도 계속될. 크레이는 그때 무언가를 이해했다. 그의 부츠 아래 붉은 흙에 묻혀 있던 진실. 위의 빈 하늘에 쓰여 있던. 차갑고 정확하고 끔찍한 무언가. 그는 무전기를 껐고 완벽한 침묵 속에 서 있었다. 무(無)를 듣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우주복을 통해, 그의 피부를 통해, 그의 뼈까지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탐사 차량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경이로운 것을 본 사람의 미소가 아니었다. 마침내 이해한 사람의 미소였다. . 기지는 화성 평원에 대략적인 원형으로 배치된 가압 모듈들의 집합이었다. 태양 전지판이 약한 태양을 추적하며 금속 꽃처럼 펼쳐져 있었다. 위성 안테나는 고향을 향해 있었다. 근처에 꽂힌 태극기는 이미 방사선으로 탈색되고 있었다. 크레이의 탐사 차량이 지평선에 나타났을 때 하인즈는 안도했다. 지휘부는 허가받지 않은 탐사 차량의 외출을 추적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크레이는 여전히 귀환 시간보다 세 시간이나 늦었지만 돌아오고 있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네 명이 에어락에 모였다. 산토스, 머서, 하인즈, 그리고 이. 그들은 강화 유리를 통해 크레이가 정확하고 서두르지 않는 동작으로 오염제거 절차를 완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헬멧 바이저를 통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심지어 평화롭기까지. 뭔가 잘못됐어, 하인즈는 생각했다. 왜인지는 말할 수 없었지만. 내부 문이 열리고 크레이가 들어섰다. 그는 항상 보여주던 것과 같은 체계적인 주의로 헬멧을 벗었다. 그의 움직임은 이전과 정확히 같았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달랐다. 돌아온 걸 환영해, 산토스가 말했다. 우리가 걱정하고 있었어. 크레이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처음 보는 것처럼, 또는 마지막으로 보는 것처럼 얼굴에서 얼굴로 옮겨갔다. 걱정할 필요 없어, 그가 말했다. 나는 괜찮아. 그의 목소리는 같은 음색, 같은 친숙한 억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본질적인 것이 비워진 듯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머서가 물었다. 너는 거의 여섯 시간 동안 무전기 침묵이었어. 생각할 필요가 있었어, 크레이가 말했다. 뭐에 대해서? 화성에 대해.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해. 그는 그때 미소 지었다. 그의 입까지는 도달했지만 그 이상은 가지 않는 미소. 다른 이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 중 누구도 정확히 무엇이 바뀌었는지 말할 수 없었지만, 모두가 느꼈다. 친숙한 노래 속의 불협화음 같은 잘못됨. 이 대장이 침묵을 깼다. 좀 쉬어, 그가 말했다. 내일 아침에 보고하자. 크레이는 여전히 그 공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이죠, 그가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들은 그가 자신의 숙소로 향하는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걸음걸이는 균형 잡히고 고르게. 너무 고르게. 마치 의식적으로 각 발을 내딛는 것처럼. 괜찮아 보여, 산토스가 말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 머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레이의 사진과 대화하는 것 같아. 고립이야, 이가 말했다. 이곳은 결국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 하지만 하인즈는 크레이가 사라진 빈 복도를 계속 응시했다. 아니, 그녀는 생각했다. 다른 거야. 더 나쁜 거. . 그들은 수경재배실에서 머서의 시체를 발견했다. 산토스가 새벽 교대 중에 그를 발견했는데, 그는 영양 수조 중 하나에 얼굴을 아래로 한 채 떠 있었다. 그의 목은 수술적 정확도로 열려 있었고, 상처는 너무 깨끗해서 거의 피를 흘리지 않았다. 그의 아래 물은 분홍빛으로 흐려져 있었다. 외부 침입의 증거는 없었다. 생명 유지 시스템이나 보안 시스템의 오작동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암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휘 모듈에서 그들은 이가 보안 영상을 되감는 화면 주위에 모였다. 수 시간 동안 아무것도 없었다. 재활용된 공기 속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식물들. 그런 다음 정전기의 폭발, 삼 초 동안의 빈 화면, 그 다음 영상이 재개되었을 때 머서는 이미 수조에 죽은 채 떠 있었다. 타임스탬프에 뭔가 잘못됐어, 하인즈가 말했다. 봐. 구석의 디지털 카운터는 중단을 보여주지 않았다. 시스템에 따르면, 녹화에는 간격이 없었다. 데이터 손상일 수 있어, 산토스가 말했다. 아니면 누군가가 조작했거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네 명이 남았다. 그들 중 한 명이 머서를 죽였다. 이는 새로운 보안 프로토콜을 명령했다. 누구도 혼자 있지 않을 것. 모든 작업에 대한 동반자 시스템. 정기적인 체크인. 비상 옆구리 무기가 배포되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날 밤 하인즈는 환기 시스템의 진동음을 들으며 깨어 있었다. 열네 달 동안 매일 밤 들었던 똑같은 소리. 이제 그것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기지 전체에 퍼뜨리는 것처럼. 정신의 전염병 같은 것. 그녀는 머서에 관해 듣게 되었을 때 크레이의 얼굴을 기억했다. 적절한 충격. 올바른 허둥지둥하는 말들. 그러나 그의 눈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유리 구슬 같이. 모든 것을 반사하지만, 아무것도 흡수하지 않는. 일찍이 그녀는 복도에서 그를 스쳐 지나갔고, 새로운 프로토콜에 따라 산토스가 세 걸음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크레이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공허한 미소를 짓고. 체류를 즐기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마치 그들이 호텔의 손님인 것처럼.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크레이의 눈 뒤에서 바라보는 무엇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 그는 미치지 않았다. 그것이 이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이었다. 크레이는 관측 돔에 앉아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변하지 않고 차가운 그들은 화성 풍경 위로 회전했다. 검은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붉은 사막. 그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전에는 그는 우주를 사랑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다.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이 임무에서 자신의 자리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화성에 온 최초의 인간들. 역사를 만드는 자들. 그러나 그는 오해했다. 낭만화했다. 공허에 인간적 의미를 투영했다. 저 먼지 속에서 그는 그것의 진실을 느꼈다. 우주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단순히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단순한 존재에서 그들을 해체할 것이다. 악의가 아닌 무관심에서. 목적이나 끝 없이 계속되는 물리학의 차가운 방정식. 그가 머서에게 행한 폭력은 광기가 아니었다. 명료함이었다. 그가 이제 알게 된 것에 대한 가장 정직한 반응. 그런 우주적 침묵에 직면한 인간이 되는 유일하게 진정한 방법은 그 침묵을 다시 반영하는 것이었다. 공허와 마찬가지로 비어 있고 목적 없게 되는 것. 그는 머서를 죽이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날이 남자의 목을 열 때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 생명이 떠나는 것을 분리된 호기심으로 지켜봤다. 이 죽은 행성에서 언덕 아래로 떨어지는 돌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 사건. 기본 법칙에 따라 스스로를 재배열하는 입자들. 이제 그들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의심. 두려움. 그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이해하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우주에게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에게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 그들은 사흘 후 온실에서 그를 코너에 몰았다. 이, 산토스, 하인즈가 미리 연습한 정확성으로 함께 움직였다. 산소 탱크를 등에 매고, 헬멧을 고정했다. 대기에 관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다. 크레이는 감자 식물들 사이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자리에서 올려다보았다. 그의 손은 흙 속 깊이 들어가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미소 지었다, 같은 공허한 미소. 결정을 내린 것 같군요, 그가 말했다. 우리는 네가 머서에게 한 일을 알아, 이가 말했다. 그의 손은 엉덩이에 있는 옆구리 무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네가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크레이는 천천히 일어섰고, 손가락에서 흙을 털어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 없이.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신들이 맞아요, 그가 말했다. 무언가가 일어났어요. 나는 진실을 봤어요. 어떤 진실이지, 산토스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안면 보호대 뒤에서 흐릿했다. 우주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크레이가 말했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폭력이 공허에 대한 유일하게 정직한 반응이라는 것. 그는 그들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이는 무기를 꺼냈지만 발사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모든 길을 왔어, 크레이가 말했다. 수천만 마일을 건넜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죽은 흙에 깃발을 꽂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주는 알아차리지 않아. 신경 쓰지 않아. 또 한 걸음. 이의 손이 약간 떨렸다. 거기 서, 그가 말했다. 크레이는 그를 무시했다. 우리는 여기 오는 것이 잘못이었어, 그가 말했다. 공허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잘못이었어.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이 잘못이었어. 또 한 걸음. 이가 발사했다. 그 소리는 제한된 공간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게 들렸다. 총알은 크레이의 어깨를 맞혔고, 그를 반쯤 돌게 했다. 그는 가벼운 관심으로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물리학, 그가 말했다. 원인과 결과.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그때 달려들었고, 가능한 것보다 더 빠르게. 그의 손이 이의 목을 감쌌다. 산토스와 하인즈는 그를 붙잡고, 그를 끌어당기려 했다. 그의 힘은 끔찍했고, 비인간적이었다. 하인즈의 손이 떨어진 권총을 찾았다. 크레이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 소리는 우주가 갈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침묵. 크레이는 으스러진 식물들 사이에 등을 대고 누워있었다. 그의 아래 고이는 피는 인공 조명 속에서 검게 보였다. 그의 눈은 여전히 열려 있었고,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인즈는 그의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해 더 가까이 몸을 숙였다. 넌 아직 그걸 느끼지 못했어, 그가 속삭였다. 뭘? 그녀가 물었다. 우주,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 지구로부터의 전송은 사흘 후에 왔다. 광대한 거리를 가로질러 임무 통제의 목소리는 평평하고 왜곡되어 있었다. 예산 제약과 정치적 고려로 인해 철수가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소행성대에서의 충돌 사건이 여러 예정된 궤도를 손상시켰습니다. 우리는 최적의 귀환 창을 재계산하고 있습니다. 작전을 유지하십시오. 자원을 절약하십시오. 추가 지시를 기다리십시오. 이는 죽었다. 크레이는 죽었다. 머서는 죽었다. 산토스와 하인즈만이 붉은 행성에 남아 있었다. 전체 세계에 두 명의 인간만이. 그들의 물자는 조심스럽게 배급한다면 앞으로 석 달은 더 지속될 것이다. 그 후에는 시스템이 고장나기 시작할 것이다. 공기는 독성이 될 것이다. 물은 고갈될 것이다. 추위가 스며들 것이다. 그들은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임무를 계속했다. 토양 샘플. 대기 판독. 그들을 살아있게 하는 장비의 끝없는 모니터링. 그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데이터를 지구로 다시 보냈다. 밤에는 그들은 관측 돔을 피했다. 별을 보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공허함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들이 숨쉬는 재활용된 공기 속에. 점점 줄어드는 식량을 키우는 수경 정원에서. 점점 더 드물어지는 그들의 대화 사이의 침묵 속에. 어느 저녁 하인즈는 산토스가 탐사 차량 중 하나를 준비하는 것을 발견했다. 어디 가는 거야, 그녀가 물었다. 그는 산소 수준, 배터리 충전을 확인하면서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냥 조금 탐험해보려고, 그가 말했다. 크레이가 갔던 같은 지역. 그가 밖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보려고. 가지 마, 그녀가 말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찾지 마. 산토스는 마침내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은 피곤했지만 맑았다. 우리는 둘 다 한때 우주를 사랑했어, 그가 말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날 만큼.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여기에 오는 것을. 끝나기 전에 이해하고 싶지 않아? 그녀는 그가 녹슨 색 평원을 가로질러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탐사 차량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점점 작아졌다. 그녀는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정말로는. 다른 무언가가 그의 얼굴을 쓰고 돌아올 것이다. 하인즈는 에어락을 봉인하고 통신 터미널로 갔다. 그녀는 지구로 보낼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들에게 도달하는 데 20분이 걸릴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너무 늦게 그것을 받아 도울 수 없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신중하게 타이핑했다. 각 단어를 선택했다. 그들이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경고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여기 화성에서 발견한 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생명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 더 끔찍한 무언가. 우주적 규모의 무관심. 빈 공간의 폭력성. 이해의 감염. 그녀가 메시지를 마쳤을 때 그녀는 기지 내에서 자신의 호흡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한때 안도감을 주었던 기계적인 진동. 이제 그것은 속삭임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밖에서는 화성의 밤이 갑작스럽고 절대적으로 내려앉았다. 별들이 검은 하늘에 나타났다. 무수하고 차가운. 우주는 모든 방향으로 확장했다. 무한하고 비어 있다. 무관심한. 인내심 있는. 하인즈는 눈을 감았지만 여전히 바깥에 그것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를 보호하는 얇은 벽에 대고 누르고 있는. 기다리고 있는. 어둠 속에서 그녀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 SK 해킹 사태 뚜까 패는 웹소설5월 15일
• 카탈라우눔 -전쟁단편소설5월 15일태양은 아직 지평선 너머였으나 그 존재는 이미 회색 장막을 통해 암시되고 있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한 그 순간. 알라릭은 창을 땅에 꽂고 자신의 검을 꺼내어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검은 무딘 빛을 내뿜었다.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에게 남겨주었고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에게서 받았다. 세 세대에 걸친 피의 기억이 스며든 강철. 안개 속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울포가 다가오고 있었다. 울포는 그의 형제는 아니었지만 혈족보다 더 가까웠다. 함께 자랐고 함께 싸웠다. 서고트의 전사들. 오늘은 피의 날이 될 것이다. 울포가 말했다. 알라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검으로 공기를 한 번 가르고는 다시 칼집에 넣었다. 멀리서 탐붕소리가 들려왔다. 훈족의 북이었다. 적들은 이미 깨어 있었다. 테오도릭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 거지. 알라릭이 물었다. 울포는 침을 뱉었다. 영광으로 혹은 죽음으로. 알라릭은 다시 동쪽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비치는 수천 개의 불빛들. 훈족의 진영이었다. 아틸라의 호드는 마치 메뚜기떼처럼 대륙을 휩쓸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테오도릭 왕은 그렇지 않았다. 늙은 왕은 로마인들과 동맹을 맺고 이 이국땅에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들어봐. 울포가 말했다. 알라릭은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런 다음 그것을 들었다. 낮은 진동. 수천 명의 사람들이 깨어나 움직이는 소리. 말들이 고동치는 소리. 금속이 금속에 부딪히는 소리. 전쟁의 소리였다. 오늘 우리는 신에게 가까워질 테지. 울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기이한 열정이 스며 있었다. 그는 항상 전투를 축제처럼 대했다. 삶을 확인하는 방법으로서의 죽음. 너의 신이 이 광기 속에 있다고 생각하나. 알라릭이 물었다. 울포는 웃었다. 신들은 항상 피를 원해왔어. 우리가 기독교도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바뀌었을까? 알라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걸려 있는 작은 십자가를 만졌다. 나무로 된 소박한 것. 그의 어머니가 죽기 전에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는 그것이 그를 보호할 수 있을지 한사코 의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니고 다녔다. 어쩌면 신이 그를 위해 계획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 남자는 남은 달빛 아래 침묵 속에 서 있었다. 그들 주위로 다른 전사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일부는 기도를 중얼거렸고 일부는 무기를 점검했다. *** 태양이 떠오를 때 알라릭은 이미 진영을 떠나 전투 대형에 합류해 있었다. 서고트 전사들이 둥근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전선을 형성했다. 그들 앞에는 로마의 군단이 있었다. 고대의 적이 이제는 동맹이 되어 함께 더 흉포한 마물과 맞서고 있었다. 그들 너머로 먼지 구름이 일었다. 훈족의 기병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태양빛 아래 검은 위협으로 다가오는 점들. 알라릭은 그의 보호용 투구 속에서 침을 삼켰다. 그의 방패가 땀으로 젖은 손바닥에서 미끌댔다. 울포가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저 악마들이 온다. 누군가가 요란하고도 엉성하게 선언했다. 알라릭은 눈을 가늘게 뜨고 먼지 구름 너머를 보려고 했다. 그는 훈족을 본 적이 없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다. 그들은 말과 한 몸이 되어 싸운다고 했다. 그들의 활은 자신들의 키보다 높았고 화살은 갑옷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의 외모는 인간보다는 악마에 가깝다고 했다. 먼지 구름 속에서 처음 기마병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기이하게 작았다. 말은 역시 작았지만 빨랐다. 기수들은 바람처럼 앞뒤로 흩어졌다. 말들은 방향없이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적을 혼란스럽게 하고 공격할 지점을 숨기기 위한 교활한 술수임에 틀림없었다. 테오도릭 왕이 그들 사이로 말을 타고 지나갔다. 그의 흰 수염은 가슴 앞으로 흘러내렸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전사들은 기운을 얻었다. 알라릭은 등을 곧게 폈다. 적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어. 울포가 말했다. 알라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훈족의 기병대는 이제 반원을 그리며 그들의 양 측면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둘러싸일 것이다. 그런 다음 학살이 시작될 것이다. 아에티우스가 무슨 계획인지 알아? 알라릭이 물었다. 로마인에게 계획을 맡길 건가. 울포는 그 어떤 로마인도 신뢰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로마와의 충돌에서 죽었기 때문이었다.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고트의 나팔. 공격 신호였다. 전사들이 앞으로 움직였다. 알라릭은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의 발은 이제 그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운명의 흐름에 휩쓸려 있었다. *** 혼란. 피. 분노. 공포. 전투. 금속 냄새. 피와 배설물과 죽음의 냄새. 공기를 찢는 비명. 방패에 부딪히는 도끼. 살을 찢는 검. 해는 하늘에서 천천히 움직였지만 알라릭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살아남기 위한 광기의 춤 속에서 그는 단지 본능을 따를 뿐이었다. 첫 번째 훈족 기수가 그에게 닿았을 때 그는 거의 죽을 뻔했다. 화살이 마치 머나먼 과거로 사라지는 것 같이 그를 지나쳤고 화살이 가른 바람이 뺨을 호렸다. 다음 순간 기수는 그 위로 있었고 칼을 휘둘렀다. 알라릭은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어올렸고 충격으로 휘청거렸다. 그의 팔이 후들렸고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고 그의 검은 살을 찾아 나아갔다. 그는 말의 다리를 베었고 그것은 쓰러졌다. 기수는 땅에 굴러떨어졌고 알라릭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검은 관통했고 피가 튀었다. 어린 시절 그는 양치기가 되기를 원했다. 조용한 시간을 들판에서 보내고 여름마다 산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전사였고 그도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여기 있었다. 처음 보는 땅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싸우고 있었다. 오른쪽에서 울포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훈족 하나를 방패로 쳐서 땅에 눕히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악마라 해도 죽을 수 있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그들도 피를 흘렸다. 그들도 죽었다. 알라릭 뒤로! 울포가 고함쳤다. 알라릭은 돌아섰고 그의 방패가 화살의 충격을 받았다. 화살은 방패의 나무를 뚫고 거의 그의 어깨까지 도달했다. 훈족의 화살은 갑옷을 뚫는다. 그는 쓰러지는 동료들 사이에서 그것을 보았다. 방패를 뚫고 사슬 갑옷을 뚫고 살을 뚫는 화살들. 알라릭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췄다. 먼지와 피에 뒤덮인 땅에 가까이. 그는 엎드린 시체들 뒤에 방패를 세워놓고 숨을 골랐다. 그의 가슴은 타오르는 것 같았고 땀은 눈을 따갑게 했다. 평생 싸워왔던 것 같았지만 태양의 위치로 보아 정오가 겨우 지난 시간이었다. 푸른 하늘이 그 위로 펼쳐져 있었다. 몇 마리의 새들이 멀리서 원을 그렸다. 일어나라! 음성이 들렸다. 알라릭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테오도릭 왕이었다. 노인은 말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묻은 검을 들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환영 같았다. 고대의 신화가 그의 앞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지금은 숨을 시간이 아니다. 왕이 말했다. 죽음에 직면하라 아들아.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 왕은 그 말을 하자마자 앞으로 달려갔다. 전투의 소용돌이로 다시. 알라릭은 한 순간 그대로 있었다. 그런 다음 일어섰다. 알라릭은 그의 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다시 한 번 전투 속으로 달려들었다. *** 날이 기울었다. 해는 서쪽 지평선에 걸려 있었다. 세계를 붉게 물들이며. 마치 대지가 흘린 모든 피를 반영하는 것처럼. 알라릭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그의 몸은 상처와 타박상으로 덮여 있었지만 살아있었다. 훈족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게 다음에는 명백하게. 그들은 말을 돌려 사라졌다. 먼지 구름 속으로. 그들이 온 곳으로. 우리가 이겼나? 알라릭은 자신에게 물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시체 위에 서 있었다. 서고트 로마인 훈족 모두 붉은 피를 흘리며 바람 없는 하늘 아래 제각각 누워있었다. 서고트의 함성이 들려왔다. 그들은 승리를 선언하고 있었다. 왜 아직 훈족의 절반도 죽이지 못했는데? 그러나 그때 아틸라가 도망쳤다는 소식이 퍼졌다. 그는 울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울포는 땅에 누워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알라릭은 달려가서 울포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마치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구멍이 있었다. 활에서 나온 화살이 만든 구멍에서는 가뭄에 시든 새싹처럼 피가 흘렀다. 알라릭은 울포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이미 차가웠다. 태양은 사라져 가고 있었고 추위가 찾아왔다. 알라릭은 울포의 시체 곁에 앉아 그날의 사건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런 답도 오지 않았다. 어둠이 그를 에워쌌다. 밤이 전장에 내려앉았고 별들이 나타났다. 마치 하늘에 좀좀이 뚫린 구멍으로 누군가 엿보려는 것 같았다. 알라릭은 서서히 일어섰다. 그는 발길을 돌려 불빛이 보이는 진영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둠의 부름. 알라릭은 그의 검을 옆구리에 찼고 칼집 안에서 그것이 부드럽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 출판계도 할리우드도, "전 세계 K-문학에 러브콜" (2025.05.14/뉴스데스크/MBC)5월 14일서점에서 만난 한 독자는 마침 한국 소설을 읽고 있다며, 가방에서 구병모 작가의 <파과>를 꺼내 보였습니다. [마린 크라스크/독자] "한국 책 맞죠?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 "한국 소설이 유행하다 최근 완전히 폭발했다"는 세계 5대 출판사 펭귄북스 편집자의 말처럼, 수상 이후 한국 작가들과 억대 선인세 계약에 나서는 출판사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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